[길 路 떠나다]안덕면 사계리 '단산'

[길 路 떠나다]안덕면 사계리 '단산'
그시절 추사도 신록에 취해 걸었을까
정상에 서면 마라도 풍광이 한눈에
  • 입력 : 2015. 05.15(금) 00:00
  • 송은범 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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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는 단산의 기괴한 모습을 보고 추사체를 완 성했다고 전해진다. 단산의 전경. 송은범기자

기슭에는 동굴진지·대정향교 자리
기괴한 단산모습 보고 추사체 완성

친한 친구 결혼식을 앞둬 부신랑을 맡으면서 지난 2주 동안 바삐 살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새순과 새잎이 돋으며 뿜어내는 연초록 빛깔이었다. '신록(新綠)'이라는 말처럼 그냥 초록이 아닌 '새로운, 싱그러운 초록'이다. 이 신록이 여름에 느끼는 진한 초록보다 더 소중하고 반가웠다.

연초록으로 무르익은 봄날,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단산'을 찾기로 했다. 정상에 올라서면 제주 서부지역의 신록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얘기를 지인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단산은 높이 158m의 오름으로 거대한 박쥐가 날개를 편 모습 같고, 또는 가운데 푹 파인 모습이 바구니 모양을 연상한다고 해 '굼지오름', '바곰지오름', '바굼지오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의 대정읍에서 유배생활을 이어갔던 조선후기 학자이자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가 단산의 기괴한 모습을 보고 추사체를 완성했다고 전해지며, 세한도(국보 180호)의 모델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간혹 단산을 '오름의 이단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제주의 오름이 대부분 둥그스름한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는 것과 달리 단산은 제주에서 드물게 거친 뾰족산이기 때문이다.

단산 정상에서 본 산방산과 안덕면.

이렇듯 단산은 벼랑과 바위로 이뤄진 험한 지형이지만 탐방로를 따라 오르면 30분~40분이면 충분하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평평한 산책로를 15분 정도 걷고 나면, 본격적인 계단이 나온다. 바람은 시원하지만 햇볕은 따가웠다.

정상에 오르면 우선 산방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제주의 해안과 서부지역의 넓은 들녘이 마치 두루마기 지도를 편 듯 펼쳐진다. 마늘, 쪽파, 보리를 심어 놓은 푸른 들녘 사이로 마을이 들어서 있고 그 너머에는 모슬포 바다가 보인다. 그 바다 위에는 형제섬이 떠있고,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탁 트인 전경과 신록의 향연,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땀을 금새 식혀주고, 지난 몇일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느낌이다.

일본군 동굴진지.

경치를 실컷 보고 내려오는 길에 단산에 있는 일본군 동굴진지도 찾아가보기로 했다. 왕복 10분 정도만 오르면 도착할 수 있었지만, 최근 비가 많이 와서 동굴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탐방로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당시에 험한 지형에 매달려 동굴을 파낸 수많은 제주사람들을 상상하니 새삼 숙연해졌다. 후에 찾아보니 공교롭게도 당시 작업이 이뤄졌던 시기가 5월이었다.

녹음으로 우거진 단산 탐방로.

단산 기슭에는 지역주민들의 교육과 교화를 목적으로 조선시대에 세워져 350년 넘게 자리해 있는 대정향교도 있다. 추사도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당시 직접 썼던 현판은 대정읍 안성리 추사관에 전시돼 있다.

추사는 8년여 유배지 제주에 머무는 동안 이곳에 얽힌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에게 붓을 잡도록 이끈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그 시절 추사의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단산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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