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② 제주전통민요보존회장 한춘자씨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② 제주전통민요보존회장 한춘자씨
몸이 기억하는 그 소리, '제주민요' 삶이 되다
가수 꿈꾸던 소녀, '제주민요'로 새로운 삶
여러 소리꾼 가르침 받으며 30~40곡 정리
"숨은 민요 많은 제주… 아직도 다 못 배워"
  • 입력 : 2022. 09.29(목) 19:00  수정 : 2023. 10. 31(화) 13:55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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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전통민요보존회를 이끄는 한춘자 씨는 "제주의 토속적인 민요만 해 왔는데 여전히 다 배우지 못 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제주 곳곳에 '숨은 민요'가 많다는 얘기다.

[한라일보] "이상하게도 그냥 하게 됐습니다. 애기(아기) 재우는 소리('애기구덕 흥그는 소리')만 해도 그렇지요. 어릴 때 어머니, 할머니, 아버지, 할아버지까지 애기(구덕)를 흥그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절로 하게 되었어요. 저도 아이를 키울 때 자장가로 애기 재우는 소리를 불러줬지요."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는 소리.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듣고 귀동냥하듯 배운 민요는 그의 삶이 됐다. 제주전통민요보존회를 이끄는 한춘자(67) 씨의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곧잘 하던 그는 동네 잔치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무대에 섰다. "노래 하나 불러 보라게." 동네 삼춘들의 말이 그를 향했다. 어머니를 따라 놀이처럼 시작한 물질을 오갈 때도 노래는 그의 벗이었다. 자연스레 가수를 꿈꿨지만 주어진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제가 열아홉 살 때, 전국을 돌던 '아마추어 가수선발대회'가 서귀포에서 열렸습니다. 거기에 나가 1등을 하니 서울에 올라가 가수 일을 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았지요. 하지만 그러지 못 했어요. 그때만 해도 가수라는 일을 천하게 보고, 화냥년 났다는 말도 들어야 했습니다. 친정이 글을 하는 집안이다 보니 더 엄격했지요."

꿈은 접었지만 질긴 인연처럼 노래는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 해녀 일을 그만 두고 스무 한두 살쯤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아 키우던 그에게 제주민요는 새로운 삶을 향하게 했다. "1994년 7월 9일". 한 씨가 정확히 기억하는 이날은 제주에서 처음 열린 '전도민요경창대회'에서 큰 상을 받은 날이다. 한 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제주 민요 명창인 김주옥 선생은 그의 스승이었다. 민요를 가르쳐 주는 곳이 없던 시절, 어깨너머로 스승의 노래를 배웠다. 지금처럼 녹음을 해 둘 것도 마땅치 않았다. 한 번 들은 걸로 받아들여 불러야 했다.

마을마다 유명한 소리꾼들도 그에게 가르침을 줬다. 무형문화재 보유자였던 성읍의 조을선, '촐 비는 소리' 같은 노동요를 들려준 조천의 고수천 씨 등이다. 한 씨는 "할머니들이 살아 계실 때 만나면 '한 번 불러 보십서'라고 하며 배웠다"며 "제주의 토속적인 민요만 해 왔는데 아직도 다 배우지 못 했다"고 말했다.

그가 현재까지 정리한 제주민요는 모두 30~40곡 정도. 여기엔 노동요와 의식요, 창민요 등이 들어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많다. 지금도 제주 곳곳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숨은 민요'가 많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동서남북, 중앙이 사는 풍습도 다르지만 소리도 다릅니다. 저희가 대화하는 것이 다르듯이 말이지요. 내 노래는 맞고 너는 틀린 게 아니라, 그 지역에선 그게 맞는 겁니다. 지금도 제주에는 숨어 있는 민요가 참 많습니다. 마을마다 한두 분은 예전부터 노래하던 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돌아가셨지요. 그래서 더 배우려고 해도 쉽지가 않습니다."



한 씨는 제주민요를 가르치는 일도 이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한 씨처럼 자연스레 민요를 접하지 못한 어린 세대부터 문화생활 경험이 없는 성인들까지 그와 함께 민요에 다가서 왔다.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정확한 박자와 마디를 맞추는 일이었다.

한 씨는 "옛날 할머니들은 특별한 곡조 없이 노래를 부르기도 해 중간에 박이 없는 경우가 있다"면서 "젊은 세대들이 쉽게 제주민요를 배울 수 있도록 박자와 마디를 정확히 맞추기 시작했다. 이게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정립한 것"이라고 말했다.

성산 어촌계 해녀들과는 지금도 꾸준히 만나고 있다. 지난 2019년 '제주국제관악제'가 계기가 됐다. 성산 해녀들은 해외 관악단과 협연하는 '해녀와 함께하는 관악제' 무대에 서기 위해 한 씨의 지도를 받아 민요와 춤사위를 익혔다.

관악제 공연에 이어 몇 달 뒤에는 캐나다로 향했다. 해외 공연에 서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해녀가 바닷속을 누비는 듯한 물질 공연으로 세계에 해녀 문화를 알렸다. 한 씨는 "지금도 성산포로 강습을 다니고 있다"며 "성산 해녀 50명이 다섯 명씩 10개 팀을 이뤄 하루 두 차례 상설 공연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 물질을 했던 그의 삶은 해녀의 그것과 멀지 않다. 그가 이끄는 제주전통민요보존회는 지난 9월 '불턱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제주 밖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최한 '2022 실버문화페스티벌- 샤이니스타를 찾아라' 제주 예선 1위에 오르며 향한 본선 무대다.

한 씨를 비롯해 회원 10명이 꾸민 공연은 제주해녀의 공동체를 담아냈다. 이제 갓 물질을 시작한 어린 해녀를 따뜻하게 보듬는 우리네 해녀들의 이야기다. 한 씨가 직접 연출을 맡았다. 한 씨는 "회원들은 적게는 5년부터 길게는 20년까지 제주민요를 꾸준히 해 오면서 무대에 오르고 있다"며 "몇몇은 지금도 해녀 일을 하고 있어 실제와 가까운 모습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푸른 바다를 닮은 '제주 소리'와 함께하는 삶. 이들의 무대는 10월 14일부터 22일까지 실버문화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 관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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