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작가의 단편 '희고 둥근 부분'은 맹점과 경계에 대한 흥미롭고도 진지한 탐구다. 사전적 의미로 '맹점'은 '보기신경이 그물막으로 들어오는 곳에 있는 희고 둥근 부분을 말하며 시세포가 없어 빛을 느끼지 못하는 영역이다. 또한 어떠한 일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 점을 뜻하기도 한다. 소설 '희고 둥근 부분'의 주인공들은 지독한 병 혹은 지독하게 신경 쓰이는 증상의 어딘가에 놓여 있다. 그들은 또한 정상과 비정상이라고 지어진 경계에 걸쳐져 있거나 누워있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 사이에서 길을 찾기 어려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임솔아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보았다'라는 착각과 '알고 있다'라는 확증이 도처에서 발생될 때에, 인간을 둘러싼 삶의 조건이 지옥에 가까워지는 걸 느낄 때가 많잖아요"라고 이야기 한다.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이 소설을 보았고 알고 있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과연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내 기억 안의 맹점은 어떤 색과 모양의 부분일까.
'시빌'의 주인공인 '시빌'과 '프랑스 여자' 속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국 여자 '미라'는 스스로의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 혹은 현재의 자신을 들어내는 과정에서 기억의 왜곡을 거친다. 마치 한밤 중에 열려지는 방문처럼 스스로의 기억은 속수무책으로 당황스럽게 찾아온다. 그런데 너무나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어떤 순간의 앞뒤에는 늘 흐릿하게 상이 맺히는 추측과 짐작만이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어떤 측면에서 기억을 선택한다는 것은 메뉴를 고른다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당장 눈 앞에 놓일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다. 지나간 것들을 기억하는 것은 무방비 상태로 놓인 옷장을 들여다 보는 일과도 같다. 크게 변한 것은 없는 것 같지만 각각은 뒤섞여 개체가 낼 수 없는 냄새와 모양을 가진다. 그리고 그것을 구별하는 일은 하나의 감각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의 많은 신비로운 것들이 그렇듯 기억 역시 감성적인 동시에 이성적이다. 기억은 때로는 '기적'이기도 하고 가끔은 필요한 '기능'이기도 하다. 또한 언제나 '불현듯'이기도 하고 매일을 '애써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억은 창작을 위한 신비로운 재료인 동시에 지금의 누군가를 구성하는 물질들의 옷장이기도 하다. 시간은 다르게 적힌다는 말의 질감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계절을 통과하고 있다.
<진명현·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