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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어린이라는 세계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입력 : 2021. 02.19. 00:00:00

영화 '승리호' 속 어린이 캐릭터 꽃님.

2월 초,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영화 '승리호'가 화제다. '승리호'는 먼저 240억원이라는 제작비가 투입된 국내 최초의 우주 배경 장르물이라는 데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다. '스타워즈'나 '스타트렉' 같이 할리우드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장르에 드디어 한국인의 손길이 닿았다고 하니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시작이었다. 아마도 예정대로 개봉했다면 지난 해인 2020년 천만 흥행의 노선을 유영했을 '승리호'는 영화사의 한 해 자금 흐름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핵심적인 상업 영화를 뜻하는 이른바 '텐트폴 영화'다. 흥행 공식에 따라 만들어지는 텐트폴 영화인 동시에 대개 주기적으로 탄생하는 천만 영화의 계보를 이어받을 적자로 평가받던 '승리호'. SF 장르라는 화려하고 값비싼 하드웨어 안에 송중기와 김태리, 유해진과 진선규라는 티켓 파워를 인정받은 배우들을 탑승시킨 이 작품은 흥행 안전에 만전을 기한 대한민국 영화계의 이른바 주력 상품이기도 했다. 또한 '승리호'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극장 개봉 대신 넷플릭스라는 OTT 플랫폼을 통해 작품을 공개하며 업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던 작품이기도 하다. 설 명절이라는 극장가의 전통적 성수기, 여러모로 화제성이 최대치에 이른 상황에서 극장이 아닌 곳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된 '승리호'의 공개 시점 또한 유례없는 시작이고 전례 없는 결정이었다. 이렇듯 다각도에서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었던 작품이었던 '승리호'는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수치상의 결과는 나쁘지 않다. 극장 개봉작의 관례대로 관객수나 티켓 수입의 성적으로 집계하기엔 불가능하지만 공개 직후 전세계 넷플릭스 유저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영화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전 세계 넷플릭스 영화 순위 1위, '승리호'가 말 그대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압도적인 관심을 받은 작품이 되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운 결과다.



 공개 후 영화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한국형 신파가 우주 영화라는 개척지에서도 굳이 필요했냐 비판하는 이들도 있고 이 정도면 첫 술에 충분히 배부른 결과라며 기술적 완성도에 특히 흡족해하는 이들도 많다. 큰 기대를 안고 영화를 본 나는 비판과 만족 사이 어디쯤에서 재미와 갸웃거림을 동시에 안고 '승리호'에서 내린 승객이었다. 들어설 땐 휘둥그레 눈을 떴지만 타는 내내 그다지 긴장감이 있던 비행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구경거리가 없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장현숙 선장과 업동이 언니 같은 사람 구경이 제일 이었고 어디서 본 것 같긴 하지만 우주를 유람하며 흥이 났던 순간도 적지 않았다. 기대치만큼이었던 장면도 있었고 기대를 밑돈 캐릭터의 서사도 있었다. 모난 데 없이 둥그렇게, 마치 유람선 같은 동선을 짠 '승리호'는 여러모로 적당한 영화였다.

 다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 받는 영화 '승리호'가 그에 걸맞는 두고두고 회자될 새로운 이야기였냐 하면 그것에는 조금 의문을 갖게 된다. '승리호'는 명백히 우주로 간 조성희 감독의 영화다. '늑대 소년'과 '탐정 홍길동'을 통해 과거 판타지를 선보인 조성희 감독의 세계관, 그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인 것이다. 분명 우주로 나아가며 기술력은 진일보했지만 감독의 세계관은 크게 확장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의 첫 작품부터 그의 영화를 좋아하게 됐는데 '승리호'를 보고 나서 이 창작자에 대한 마음은 싫어지지 않는다에 가까웠다. 아쉽게도 더 좋아지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조성희의 세계는 여전했다. 처음 보는 우주의 풍경들이 등장한 덕에 일견 낯설게 보이지만 사실은 늘 그랬듯 사랑스러운 동화의 순간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가 영화에 가장 먼저 태우는 캐릭터가 어린이여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조성희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승리호'는 꽃님이이자 도로시인 어린이 캐릭터가 어른들을 구원하고 어른들로부터 구해지는 영화다. 조성희 감독은 어린이 캐릭터를 생생하고 자연스럽게 극의 중심으로 안착시키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는 어린이의 대사와 몸짓을 통해 극 중 어른 캐릭터는 물론이고 어른 관객들을 무장 해제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단편 '남매의 집'부터 '늑대 소년'과 '탐정 홍길동'까지 조성희는 어린이의 손을 잡지 않고는 이야기를 걸어가지 못했던 창작자다. '승리호'의 복잡하지 않은 서사를 강화시키는 이를테면 권선징악의 구조를 그대로 우주로 데려간 조성희는 무엇보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힘과 아름다움에 대해 골몰한다. 그 덕에 우리는 이 영화 속에서 어른이 되지 못한 성인들이 우왕좌왕하는 장면들에서는 지루함을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전작 '탐정 홍길동'에서 어린이 캐릭터인 말순이가 가지고 있던 파괴력은 바로 극의 재미이자 핵심이 됐다. 주연인 홍길동보다 먼저 관객의 마음을 훔치고 돌려주지 않는 엄청난 역할을 한 것이다. 아쉽고 흥미롭게도 '승리호' 또한 여전히 성인 배역들이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한 영화다. 이 작품에서 성인 캐릭터들이 어린이라는 세계에 진입하지 못한 장면들은 놀라울 정도로 평면적이다. 늑대 소년이 살고 있는, 홍길동이 찾아다니는, 꽃님이를 잃어버린 공간 속에서 조성희 감독은 여전히 어린이의 손을 잡고 있다. 나는 '승리호'의 장면 중 꽃님이가 그린 그림 앞에 멈춘 어른들의 모습이 담긴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굳이 우주도 장르도 큰 예산도 필요 없는 그 장면에서 나는 조성희라는 창작자의 또 다른 소우주를 기대하게 됐다. 그는 좀 더 본격적으로 어린이를 탐구할 수 있는 어른이다. 그의 차기작을 여전히 기다린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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