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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기획]한국축구의 새물결 '붉은악마'
/성의돈 기자 edsung@hallailbo.co.kr
입력 : 2002. 06.27. 13:43:27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이 2002 한·일월드컵에서 ‘첫 승과 16강진출’이라는 당초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 4강진출로 세계 축구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한국축구가 이 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12번째 선수’인 붉은악마의 전폭적인 응원과 성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축구의 눈부신 성장으로 인해 국가대표팀 공식서포터즈인 ‘붉은 악마’(Red Devils)가 이번 월드컵을 통해 국제적 브랜드로 떠올랐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서포터(응원단)인 ‘붉은 악마’는 철저한 상업주의 배격과 아마추어리즘을 고집하는 신세대 응원단. 서울 광화문·시청, 제주시 탑동광장, 제주경마장 경마공원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펼쳐진 7백여만명의 거리 응원전을 주도하고, 경기장마다 붉은 물결을 이뤄냈다.

 붉은악마 티셔츠와 목도리 등은 없어서 팔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이제야 말을 뗀 세살박이 어린이에서부터 80대의 노인에 이르기 까지 한국팀이 경기를 갖는 날이면 모두 목청껏 ‘대∼한민국’과 ‘오∼필승 코리아’를 연호한다.

 온국민을 한마음으로 뭉치고 이를 우리나라 축구발전의 원동력으로 이끈 ‘붉은악마’,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탄생

 붉은 악마는 지난 95년 12월 16일 서울 대학로의 카페 ‘칸타타’에서 시작됐다. PC통신 하이텔의 10여개 ‘축구동호회’ 운영자 10여명은 이날 축구 응원문화의 개선을 위한 회의를 갖고 ‘칸타타 선언’을 채택했다. 이들은 한국식 축구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국가대표 공식 응원단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 선언 이후 국가대표팀 경기마다 3백∼4백명 단위로 한국팀 유니폼을 입고 자신들을 ‘서포터’라고 부르는 ‘단관’(단체관람·붉은 악마들끼리 사용하는 말임) 모임이 등장했다.

 지난 96년 여름 한국―중국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3만여명의 관중들 틈새에서 3백여명이 될까말까한 일단의 ‘무리’가 붉은 색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당시엔 ‘붉은 악마’란 이름도,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도 없었다. 수만명 관중들 틈에서 이들의 존재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목놓아 ‘아리랑’과 ‘애국가’를 불렀다.



△명칭의 유래

 붉은 악마(Red Devils)라는 이름은 조직이 탄생한 지 1년 반만에 지어졌다. 처음 이름은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였다. 그러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을 한 해 앞둔 97년 5월 1일 하이텔 축구동호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한국 대표팀을 만들겠다’는 공지와 함께 명칭을 공모했다. ‘레드 일레븐’, ‘레드 맥스’ ‘꽹과리 부대’, ‘쿨리건’, ‘레드 워리어즈’ 등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름에 ‘레드’가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공통점이었고, 그 중 83년 멕시코청소년축구대회 이후 우리 대표팀의 별명으로 사용되곤 했던 ‘붉은 악마’에 대한 호응이 가장 컸다.

 97년 8월 ‘붉은 악마’는 한국 대표팀 서포터의 공식 이름으로 채택됐다.



△치우천왕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 ‘치우천왕(蚩尤天王)’상은 기원전 2707년부터 109년간 중원의 배달국가를 다스린 인물로 전쟁에서 반드시 이겼다는 전설의 주인공. 붉은 악마가 인기를 끌면서 기업체들마다 치우천왕을 탐내고 있지만, 붉은 악마는 단 한 차례도 이 치우천왕의 상업적 이용을 허락한 적이 없다.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는 현재에도 각 기업체로부터 거액의 스폰서 제의가 들어오고 있지만 당초 취지에 퇴색된다며 거절하고 있다.



△철저한 아마추어리즘

 붉은 악마의 응원 연습과 경기 관람은 붉은 악마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연락으로만 이뤄진다. 붉은 악마의 원칙은 아마추어리즘. 각 지역에서 경기가 열릴 때 응원을 주도하는 것은 중앙조직이 아니라 해당 경기가 열리는 지부들이다. 부산에서 한국―폴란드전이 열리면 붉은 악마 영남지부가 응원을 진행하는 식이다.

 서울 신문로 대한축구협회 건물 4층에 있는 5평 남짓한 붉은 악마 사무실엔 평소 근무하는 인원이 10명도 채 안된다. 회원들은 주로 통신문화에 익숙한 20대로 구성되지만, 지부장이나 사무국 일은 30대들이 맡고 있다. 온라인으로 가입한 일반 회원들의 연령대는 초등학생에서 노인들까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지난 2000년 초 전국 회원이 5천여명에 불과했으나 월드컵 개막과 대표팀의 잇따른 승전보로 현재 11만여명을 넘어선 거대조직으로 거듭났다.



△중앙조직 해체

 현재의 붉은 악마는 ‘너무 거대해졌다’는 것이 붉은 악마 스스로의 진단이다. 붉은 악마는 이번 월드컵이 끝난 직후 중앙조직을 ‘해체’하고 각 지부 나름대로 운영해가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것이 그동안 자신들이 추구해온 스포츠정신에 더 부합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당초 ‘붉은 악마’ 브랜드의 상품화를 반대했지만 조직이 커지면서 현대자동차 3억3천만원, SK텔레콤 3억원, 외환카드 3억원 등 10억원대의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나면 스폰서 계약은 모두 끊긴다.

 붉은악마는 앞으로도 당초 설립 취지를 벗어나는 어떤 유혹에도 현혹되지 않고 순수성을 지켜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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