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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탐사
[대하기획/한라산 학술대탐사(238)]
제2부 한라대맥을 찾아서 (72)
서부 중산간마을 감싸주는 ‘옛 사냥터’
입력 : 2005. 04.01. 00:00:00

▲저지마을의 진산 저지오름 전경. 조선 중기 때 이 곳에서 수렵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오름으로 한경면 오름군의 대표격이다. /사진=강경민기자 gmkang@hallailbo.co.kr

저지오름·이계오름

주말마다 궂은 날씨가 연속이었는데 오랜만에 쾌청한 날씨다. 그래서인지 산해의 기분이 그만이다. 이제 한라대맥 탐사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대맥탐사의 끝점인 당산봉과 수월봉을 바라보면서 한경면 저지리 마을에 오롯하게 솟아있는 저지오름과 이계오름을 탐사했다.

 마을 뒤편으로 저지오름의 북사면에 접근하였다. 오름의 여러 자락에는 저지리공동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수백 개의 묘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치 평화롭게 따뜻한 봄볕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라고 할까. 이 곳에 묻힌 사람들은 거의가 저지마을 사람들이기에 살아 있을 때도 이웃이었고, 죽어서도 함께 잠들어 있다. 그렇다면 이승에서도 그렇고, 저승에서도 똑같은 운명일 것이라는 생각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묏자리마다 팻말이 꽂아 있다. 한경면사무소에서 묘지관리사업을 추진하면서 묘주에게 신고하라는 내용이다. 재미있는 비석들이 더욱 눈길을 끈다. 보통의 비석도 있지만 나무나 바위를 세우고 묘비명을 쓴 경우도 있고, 산담 돌에 표시한 경우도 있다. 너무나 소박한 것이 특색이다. 묘주들이 이웃하고 있는 무덤들과 헷갈리지 않기 위한 임시조치라고 여겨지는데 여간 정성스럽지가 않다.

 저지오름을 단숨에 오르면 꽤 숨이 차다. 적당한 경사가 있어 산책코스로 적합할 듯하다. 아직까지는 오름 탐방객이 적어서인지 숲이 무성하여 원형분화구의 능선을 한바퀴 돌기가 어려울 정도다. 정상에 산화경방초소가 있는데 한경마을 전체가 조망되고 바다 풍광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육박나무, 후박나무, 탱자나무, 삼나무, 참식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목이 생육하고 있다. 수목사이로 움푹 팬 분화구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표고 239m인 저지오름은 마을쪽에서 보면 비고가 100여m정도로, 마을의 진산(鎭山)으로서 믿음직스럽기만 하다. 산상의 화구를 중심으로 거의 원형을 이루는 산체다. 어디서 봐도 비슷하게 보인다. 분화구 둘레가 900여m. 분화구 내의 깊이는 60m에 불과하지만 꽤 가파른 경사를 가지고 있다. 일단 이 분화구에 동물들이 들어가면 단숨에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다. 그래서 저지오름은 들짐승을 잡는 데에 더욱 쓸모가 있었으리라

 조선 숙종 20년(1694) 6월 제주에 이익태(1633∼1704)목사가 부임한다. 2년여 간 제주목사로 재임하며 제주목 정비와 학문 장려책을 펼쳤으며, 특히 탐라에 대한 문헌이 부족한 것을 알고 ‘지영록(知瀛錄)’을 저술했다. 이 지영록에는 하멜 표착지 기록이 나와 있는가하면 제주에서의 행적이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돼 있어 당시의 제주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 중에 두 번의 사냥(수렵)기록이 있다. 1694년 9월 10일에는 별방소(북제주군 구좌읍 하도리)를 출발하여 구좌읍 송당리 소재 아부오름에서 노루와 사슴을 사냥했고, 9월 16일에는 초악(草岳, 저지오름)에서 사냥했다는 것이다.

 저지오름에서의 사냥기록을 보면 ‘아침 일찍 아병 이초(2백명)와 영목 각 반 하인들이 거느리고 명월소(한림읍 명월리)를 출발하여 오름 꼭대기에 진을 쳤다. 몰이꾼들이 이미 줄을 헤쳐 수십리 밖에서 함성을 지르니 사방을 진동시켰다. 뭇짐승들이 뛰쳐나오자 총과 화살을 교대로 쏘니, 비 오듯 흘리는 피며 바람에 날리는 털도 잠깐, 등에 지거니 싣거니 한꺼번에 잡을 걸 가져왔다. 역시 장관이었다’고 적고 있다.

 저지오름은 일명 새오름이라고도 한다. 산 모양이 새 둥주리 같이 생겼다고 해서인데 둥그렇게 분화구가 패어 있는 모습이 산위의 새집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저지의 옛 이름이 닥나무가 많았던 데서 닥모르였고 오름 이름도 닥모르오름이라고 한다. 지금의 저지오름이라는 호칭은 마을 이름이 저지로 되면서부터 생긴 한자명이다.

 이계오름은 저지오름 남서쪽 길 건너에 있었다. 길 가에 가로누워 있는 나직한 오름으로 표고는 168m이다. 단숨에 정상부에 올라 보니 솔숲 사이로 고산리 바닷가의 당산봉, 수월봉, 남으로는 모슬봉에 이르기까지 서부 해안지역의 조망이 펼쳐져 있다.

 오름 허리 지점에 묏자리 비석에는 이계악(離鷄岳)이라고 표기돼 있다. 풍수지리상 저지오름은 닭이고, 가까이 떨어져 있는 이 오름은 알이라는 것이다. 오름 이름과 관련해선 여러 이유가 있기 때문에 솔직히 어느 주장이 옳은 지 분간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길가에서 보니 조림에 의하지 않은, 가느다랗게 자란 소나무들이 무성한데 그 소나무 자연림이 흔들거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별취재팀



[전문가리포트]서부지역 원형 분화구 본보기

 저지오름은 서부지역의 한경면을 대표하는 오름 중의 하나이다. 이런 사실은 오름 정상에 올라 분화구 안쪽을 내려다보면 금세 실감할 수 있다. 저지마을의 동쪽에서 바라보는 저지오름은 제주도내 아무 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단순한 오름처럼 다가온다. 남북으로 비슷한 높이로 솟아있는 두 봉우리를 축으로 하여, 분화구가 위치하는 중심부로는 아주 완만한 각도로 경사지는 모습이다.

 더불어 오름의 높이나 산체의 크기로 보더라도, 저지오름은 그다지 위엄스럽지도 않거니와 그렇다고 해서 험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도 않는다. 저지오름은 해발고도로는 239m(북쪽 봉우리)이고, 주변부의 평지와 비교되는 비고(比高)로는 104m이며 산체의 면적은 37.9ha이다.

 저지오름 주변에는 크고 작은 오름들이 한가족처럼 둘러앉아 있다. 바로 좌측으로는 가메창(암메, 비고 6m)과 이계오름(동, 38m)이 자리잡고 있고, 북쪽의 우측전방으로는 마오름(동 27m)과 송아오름(동 29m)이 자리잡고 있다. 떨어진 거리로 보면, 가메창과 이계오름은 불과 100∼200m 이내에 있고, 마오름과 송아오름은 각각 400m와 1000m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오름을 지형도상에서 보는 이미지는 마치 어미 닭인 저지오름이 4개의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다. 대개는 저지오름을 ’새오름(鳥岳)’이라고도 부르는데, 하나의 큰 새(저지오름)가 새끼(알)를 거느리고 있는 형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지오름의 북서사면에는 마을공동묘지가 조성돼 있다. 저지오름은 북서사면 방향으로 완만하게 경사져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북서사면을 공동묘지로 이용하는데 매우 편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공동묘지를 지나 오름 정상으로 향하는 오솔길 등산로는 저지오름을 등반하거나 탐사하는데 가장 편리한 코스이다. 공동묘지 방향에서 북쪽 정상까지는 대략 20여분 정도면 족하다. 그리고 북쪽 정상에는 탐방객들을 즐겁게 맞이하기라도 하듯 산불예방을 위한 작은 초소가 설치돼 있다.

 오름 사면은 주로 인위적으로 식재된 해송으로 덮여 있고 분화구 주변에는 크고 작은 잡목으로 엉켜져 있다. 따러서 분화구 안을 감상하려면, 특정장소를 물색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우리 탐사단은 남쪽 봉우리로 향하는 중간지점에서 분화구 안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저지오름의 분화구는 매우 가파른 원형을 취하고 있으며 깊이가 약 60여m, 둘레가 약 900여m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지오름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는 월림마을, 서쪽으로는 조수마을과 한원마을, 그리고 남쪽으로는 청수마을 등이 한적한 공간에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제주도의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로, 전원적인 이미지를 물씬 풍겨주는 마을들이다. 아울러 북쪽 정상에서 가까운 한쪽 능선에는 저지마을의 본향당인 ’저지 허릿당’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이곳은 저지마을 사람들의 정신적인 의지처(依支處)라 할 수 있다.

 이번 탐사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분화구 안으로 전혀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분화구 안쪽 사면이 급경사에다가 가시덤불과 잡목으로 뒤덮여 있어서, 도저히 접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화구의 위용으로 봐서는 언젠가 꼭 한번 탐사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정광중 탐사위원(제주교대 교수/인문지리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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