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사람들의 곤궁한 삶은 결과적으로 기름기가 적고 양념을 덜친 담박한 식단을 낳았다. 한 요리학원에서 수강생들이 제주음식을 만들고 있다. /사진=김명선기자 mskim@hallailbo.co.kr 오랜 기간 구황음식이 제주섬의 주식 밥.반찬 대신 야채.해조 섞은 비빔밥 갖은 양념사용 늘어 고유맛 희미해져 조밥, 된장국, 김치, 야채절임(와산리). 보리밥, 미역된장국, 자리젓(북촌리). 보리밥, 된장국, 날콩잎(교래리). 일본인 이즈미 세이치가 기록한 1930년대 후반 제주섬의 식단 풍경이다. 보리·조·피가 주식이었고 조선된장, 야채, 콩, 잎, 자리 등이 주된 부식물이었다. 그로부터 30년뒤 어떻게 변했을까. 이즈미 세이치는 1965년 제주를 찾아 또한번 식단을 기록한다. 봄에는 저장해 두었던 곡류를 먹으면서 보리 수확때까지 견뎠다. 배추와 젓이 식재료가 되고 식사횟수도 하루 두끼니를 넘기기 힘들었다. 보리가 수확되는 여름에는 보리·팥 밥이 만들어지고 날콩잎을 먹는다. 국에도 신선한 야채가 쓰이고 자리도 날 것이 인기다. 가을에 조가 수확되면 보리·조·팥을 섞은 밥을 지어먹고 갈치·전갱이·고등어 말린 것을 먹을 수 있다. 콩가루를 섞은 콩국도 이 계절에 등장한다. 그것이 겨울까지 이어진다. 30년간 크게 변한 게 없다. 겨울에서 봄에 걸쳐 하루 세번 식사를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뭍에 비해 갑절의 노동력을 들여야 밭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다. 제주섬 화산회토 토양은 이 지역의 음식문화와 연관이 있다. 바깥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여자로선 오래 삶기보다 단순한 조리법으로 빠른 시간내에 음식을 만들어내야 했다. 자리돔을 된장에 바로 찍어먹는 것처럼 날 것도 즐겼다. 거친 음식을 먹기 위한 국이 발달했다. 찬의 종류가 많지 않은 제주에서 국은 유용하다. 그중 된장국을 많이 먹었다. 된장을 풀어 냉국을 만들고, 채소·미역 등을 넣은 된장국을 끓여 먹었다. 제주음식이 세찬 변화를 겪은 것은 1960년대 이후다. 육지의 쌀 생산량이 늘면서 쌀과 보리, 보리와 조를 반반 가량 섞은 '반지기밥'이 나온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엔 주식이 쌀밥으로 바뀐다. 상차림도 그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나온 '제주도의 식생활'(1995)에는 쌀밥 위주의 주식이 라면, 식빵, 소시지, 어묵, 참치 통조림, 콩기름, 참기름, 화학조미료, 설탕, 커피, 요구르트, 우유 등에 대한 이용빈도가 높아지는 식생활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썼다. 일상에서 제주의 전통음식을 요리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자녀들이 먹지 않아서', '만드는 방법을 몰라서', '재료가 비싸서'라는 답이 나왔다.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하면 옥돔국, 갈치국, 성게국, 보말국, 전복죽, 자리젓, 자리물회, 빙떡, 오메기떡 등을 떠올린다. 이즈막에 제주음식을 두고 '웰빙음식', '슬로푸드'라고 부르면서 치켜세우지만 실은 곤궁한 삶이 장식없는 간소한 식단을 낳았다. 오랜 기간 제주음식은 기근때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먹었던 구황음식이 주종을 이뤘다. '제주도의 식생활'에 소개된 구황음식만 하더라도 너패(해초 넓패)밥, 톨(톳)밥, 감저(고구마)밥, 피밥, 전분쭈시(전분을 뽑고 난 찌거기)밥, 송피(소나무 속껍질)죽, 섯보리(설익은 보리)죽, 모몰(메밀가루)범벅, 놈삐(무)범벅, 몸국(돼지의 내장이나 비계를 넣어 고은 국물에 모자반을 썰어넣어 끓인 국), 고사리국, 톨냉국, 보말(고둥)국, 멜(멸치)국 등이 있다. 쌀밥 위주의 일상적인 식사와는 딴판이다. 이중엔 최근 제주의 '토속음식'으로 애용되는 것들도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는 제주음식이 한국음식과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지닌 점에 주목한다. 일반적으로 한국음식의 일상식이 '밥+반찬'이라는 상차림을 기본으로 하고 반찬은 모두 밥을 먹기 위해 마련된 부속물이다. 이에비해 제주는 밥 자체가 잡곡밥이거나 잡곡에 채소, 해조 등을 섞은 일종의 비빔밥이라고 언급했다. 흔히 제주음식의 특징을 말할 때 '제 철에 나는 신선한 재료'를 쓴다고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제주만의 특성이 아니다. 냉장이나 저장시설이 마땅치 않았던 시절엔 어느 지역이든 계절에 나는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게 당연지사다. 벼랑끝의 삶과 마주했던 제주 사람들은 밭과 바다에서 나는 갖은 재료를 서로 혼합시켜 때로는 별미를, 때로는 약용의 음식을 만들어냈다. 김지순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장은 "제주음식이 육지화하면서 갖은 양념에 고추장, 고춧가루를 지나치게 많이 쓰면서 제주음식이 지닌 담박한 특징이 희미해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진선희기자 jin@hallailbo.co.kr 제주산 재료 쓰면 향토음식일까 '섬의 맛' 찾기 위한 정책 개발 나서야 관련 운영지침엔 '지역에서 생산되는 음식재료로 그 식재료에 적합한 조리법을 이용해 지역 이미지를 나타낼 수 있는 음식'을 파는 곳을 향토음식점으로 써놓았다. 다만, 제주산 재료의 공급이 부족할 경우엔 국내산 식재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향토음식점은 1년에 한차례 실태조사를 거쳐 지정한다. 이들에겐 수도세 30%감면 등의 혜택을 준다. 지난 4월엔 제주대와 제주도관광협회가 처음으로 '고품격 향토음식 관광전문점'을 선정 발표했다. 제주음식의 범위를 넓히되 딱 10곳만 지정해 희소성을 높였다. 이미 향토음식점으로 지정된 8곳이 포함됐다. 이들 음식점중에는 제주음식을 '전국화'하는 데 힘을 보탠 곳도 있다. 옥돔미역국, 갈치호박국은 1978년에, 고등어조림과 갈치조림은 1991년에 각각 모 음식점을 통해 등장하면서 유행을 탔다. 30년 가깝게 향토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진현씨는 "처음 관광객들에게 옥돔미역국을 냈을 때 '이게 무슨 국이냐'며 냉대를 받기도 했지만 차츰 익숙해지면서 다른 지역 사람들의 입맛을 끌어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주음식이 '외지인'들을 겨냥해 개발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향토음식점에서 판매되는 게 전부라고 보면 된다. 도내 특급호텔에서도 흑돼지, 성게미역국, 보말미역국, 갈치고등어조림, 옥돔구이, 해물뚝배기 등을 제주음식으로 내고 있을 뿐이다. 반찬은 '육지식'으로 변한 지 오래다. 외식산업의 생명은 '남다른 맛'일 것이다. 제주대 식품영양학과에서는 최근 4~5개월간 구황음식이었던 '쉰다리'(쉰보리밥에 누룩을 버무려 발효시킨 후 체에 받쳐 걸러내 끓인 후 꿀이나 설탕을 넣은 것)를 응용한 음식을 개발하는 데 노력을 쏟았다. 쉰다리는 요즘식으로 말하면 떠먹는 요구르트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이를 실용화하는 게 과제다. 전북 전주시는 1998년 향토음식발굴육성및관광상품화 관련 조례를, 2005년엔 전주음식명인·명소발굴육성조례를 잇따라 만들었다. 향토음식 조례엔 조리자 인턴제 실시, 향토전통음식연구소 설치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지역의 '맛'을 가치있는 자원으로 여기고 소매를 걷어붙인 전주시의 사례는 새길 만하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인 만큼 '제주의 맛'을 발견하는 데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진선희기자 jin@hallailbo.co.kr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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