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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를 잇는 사람들
[代를잇는사람들](2)대장장이 이승태씨
숙명처럼 받아 들인 풀무질
이현숙 기자 hslee@hallailbo.co.kr
입력 : 2008. 01.19. 00:00:00

▲제주시 오일시장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이승태씨(47). 이씨는 숙명처럼 이어받은 아버지의 대장간을 10년째 지켜오고 있다. /사진=강희만기자

제주 특유 농기구 제작 애착

대장간 분야 무형문화재 '꿈'



참 멀리 돌아서 여기까지 왔다. 어린시절 늘 지켜봤던 대장간의 추억을 뒤로하고 '좋은' 대학교에 갔다. 그리고 번듯한'육지살이'를 하려고 했지만 녹록치 않았다. 뭐를 해도 잘 풀리지 않았다. 10여년의 혼돈을 끝내고 지금은 너무 행복한 모습으로 숙명처럼 아버지의 대장간을 10년째 지키고 있다.

제주시 오일시장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이승태씨(47). 대장간에 들어서자 석탄이 벌겋게 타고 있는 큼직한 화덕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는 현재 7~8명밖에 안남아있는 제주지역 대장장이 중에서 가장 젊다. 지난 2006년에 돌아가신 아버지 故 이원일씨(34년생)가 50여년동안 대장장이로 살아온 덕분에 유년시절 집과 붙어있는 대장간에서 놀았다. 그곳에서 쇠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아버지의 모습은 '강인함' 그 자체였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아버지의 그림자와 겹쳐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제주는 돌밭이 많기 때문에 '골갱이'라 불리는 제주호미는 독특하게 생겼다. 더 가늘고 좁다. 이 뿐이 아니다. 제주의 농기구들은 '육지'와 다른 것들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제주 농기구를 만들어내는 대장간이 꼭 있어야 하지만 대장간 풍경은 점차 사라지고 이를 배우려는 젊은 사람들도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이씨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도 '골갱이'다. 농기구 중에서 가장 작으면서도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까다롭다. 하지만 제주농민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니 보람도 크다. 하나하나를 만들때마다 그는 '작지만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된다.

요즘 그는 또다른 즐거움에 푹 빠져있다. 장을 보러오는 사람들과 나누는 '수다'가 그것이다. 부업으로 칼·낫 등을 갈아주다보니 벌초철에는 줄지어 기다리는 행렬도 이어진다. "순수하고 순박한 농민들과 얘기를 하는 것이 너무 좋아요. 할머니들은 조금 잘 해드리면 다음 장에 꼭 와서 뭔가를 주고 갑니다. '정'이 바로 이런거죠."

그는 꿈이 많다. 타지역에는 대장간 분야에서 '명장'이 있지만 제주지역에서는 아직 없다. 그래서 언젠가는 제주의 독특한 농기구를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씨는 누구든지 대장간의 일을 배우겠다고 하면 즐겁게 가르쳐줄 생각이다. "가치가 없는 일은 하나도 없어요. 힘들고 하찮게 보이는 일이라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죠. 작지만 가치를 느끼고 싶은 젊은 사람들이 나와서 제주의 독특한 대장간이 계속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내친 김에 한마디 더 보탰다. "대장장이는 정년퇴직도 없습니다. 힘이 있으면 계속할 수 있고, 유행도 타지 않아요. 얼마나 좋아요? 망치질은 참 정직합니다. 몇번 때렸는지, 어떻게 때렸는지에 따라 쇠가 말을 잘 듣고 단단한 농기구가 탄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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