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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 쓰게마씨
[제주어 쓰게마씨](7)`제주속담사전` 엮은 고재환씨
'민중의 詩' 듣노라면 마음에 큰 물결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입력 : 2008. 03.27. 00:00:00

▲'제주속담사전'등을 펴내며 보배로운 제주어의 가치를 전해온 고재환씨. 지난해 제주어 보존 조례 제정에 이은 실질적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무형문화유산 제주어 하루가 다르게 소멸의 길

말뿐인 제주어 정책 탈피 전문연구소 설립부터


"속담은 민중의 시(詩)입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도 짤막한 구절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지 않습니까?"

고재환씨(71·전 제주교대 교수)하면 제주도 속담이 떠오른다. 일찍이 '제주속담사전'을 엮어낸 영향이 크다.

그가 제주 속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78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다. 제주적인 것을 연구해보자는 생각으로 속담을 그 주제로 잡았다. 채록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1시간째 녹음기를 켜놓고 있더라도 속담 하나를 건지는 일이 어려웠다.

1980년대 초반 배편이 지금처럼 넉넉치 않았을 당시, 어렵사리 마라도에 갔지만 단 한편의 속담을 채록하는 데 만족해야 했던 일이 있다. '좀녀 늙어 죽은 건 거름도 안된다.' 물질로 한평생 가족을 먹여살리지만 나이들어선 병든 몸 뿐인 해녀의 곤궁한 삶을 드러내는 속담이다.

그가 20여년간 채록한 제주 속담은 1천8백여편. 이를 이기문의 '속담사전'과 일일이 비교해가며 제주 속담으로 분류될 만한 것을 가려뽑았다. 1천3백여편이 됐다. '제주속담사전'은 그렇게 탄생했다. 사전을 만들면서 '늙은이 목둥인 구들구석이 세와뒁 간다'(늙은이 지팡이는 방 구석에 세워두고 간다)는 속담이 인상적이었다. 방 구석에 지팡이를 내려놓고 세상을 뜨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너희들도 늙는다'는 걸 일깨우는 내용인데, 그 비유에 감탄했다고 한다.

제주어로 섬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나 지혜를 담고 있는 속담이지만 차츰 그 쓰임새가 적어지고 있다. 그는 70세 이상의 노인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쯤에는 제주어의 60~70%가 사라지지 않을까라고 걱정했다.

"제주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말하면서도 정작 제도권 교육에서는 제주어가 외면받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부부끼리 제주어를 쓰다가도 아이들과는 표준어로 대화합니다. 도민들이 일상에서 즐겨써야 하는데, 제주어를 가르치는 게 마치 외국어교육처럼 되어버리고 있어요. 조기 영어교육을 시키듯, 어릴적부터 제주어를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사라지는 제주어가 있지 않을까. 그는 제주어 조례가 제정된 만큼 그것을 뒷받침할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주도에 "무형문화유산인 제주어 정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제주어 전문연구소의 설립은 그중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여러 지방의 문화가 합쳐져서 한 나라의 문화를 이루듯, 제주어도 우리말의 중요한 뿌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제주어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영어교육에 쏟는 관심의 1/3정도만 제주어에 돌리더라도 상황이 달라질 겁니다."

2002년 퇴임 이후에도 강연회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제주어의 기본 원리를 담은 단행본 발간을 준비중이다. 지난해 5월부터 음운, 형태, 품사, 어휘, 표기법 등을 정리하고 있는데, 예정보다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형태론 하나만 갖고도 책이 한권 나오겠더라"는 그의 말처럼 제주어라는 우물이 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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