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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를 잇는 사람들
[代를잇는사람들](10)
제주라이카사 김용구·동수 부자
"추억을 지켜가고 싶었죠"
이현숙 기자 hslee@hallailbo.co.kr
입력 : 2008. 04.19. 00:00:00

▲김용구씨와 아들 동수씨가 현상소에서 인화된 사진을 보면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김명선기자 mskim@hallailbo.co.kr

제주 첫 컬러사진 현상소 설립·운영
"복원 사진 보고 고객 기뻐할 때 보람"


한 쪽이 뜨면 다른 한 쪽은 지게 마련이다. 디지털의 '쓰나미'에 밀려 급격히 자취를 감춘 '아날로그 업종'들이 그렇다. 1970~199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제주 첫 컬러사진 현상소 제주라이카사도 그중 한곳이다.

사진관을 다니던 김용구씨(72)가 제주라이카사의 문을 연 것은 1960년 2월 5일. 48년을 훌쩍 넘겼다. 당시 기계값은 집 한채 값을 넘기고도 남았던 시절이었다.

김씨는 "호황을 누린 시절도 있었지. 제주로 신혼여행을 오는 이들을 상대로 택시기사들이 사진영업을 했어. 사진기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니까. 그땐 관광객들도 찍은 사진을 현지에서 뽑아 보는 재미를 느꼈었는데…."

'디카시대'가 오면서 사진현상소는 남아있는 곳보다 사라진 곳이 더 많다. 그래도 제주라이카사는 수십년된 단골이 많고 대형 작품사진 인화가 가능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몸집은 많이 줄었다. 이젠 직원들도 필수인원만 가동하고 있다. 수입이 줄어 직원을 더 둘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아들 동수씨(31)가 가업을 잇기로 했다. 2000년부터 아버지를 돕기 시작한 아들은 2002년부터 정식으로 일하고 있다.

"미안하고 걱정이 되죠. 미래가 보장되는 가업을 넘겨줘야 하는데 사실 현상소의 명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니까." 아버지는 그래도 늘 아들에게 '장인정신'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들의 각오는 어떨까. "부담스럽죠. 하지만 나이드신 분들에게 라이카사는 단순한 영업점이 아니라 추억 그 자체가 되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지켜온 곳을 오래도록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계속 모색해야죠." 아들은 현상소에서 일하면서 '인생의 짝'을 만났고 지금은 갓 5개월 넘은 아이를 둔 어엿한 가장이다.

오랜 세월동안 현상소에 쌓인 사연·추억은 얼마쯤일까. "몇십년 전이었을거야. 당시 신문사에는 사진기가 몇 대 없었고 큰 사건이 나면 기자들이 얼른 현상소에 있는 사진기를 들고가 찍는 일이 많았지. 그리고 내가 인화한 사진이 공모전에서 수상했다며 빵·막걸리 같은 것을 사들고 올때면 얼마나 기뻤는지…"

아버지의 회상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제일 보람을 느낄땐 급하게 복원해야할 중요한 사진이 있다고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정성껏 작업을 하고 손님이 만족할때지."

아들이 말을 이었다. "관광객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월·화요일에는 아버지가 24시간 내내 일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땐 그래서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기계를 돌릴때보다 세워둘때가 더 많으니..."

"수입은 괜찮은가요?"라는 질문에 아들이 기자에게 되물었다. "20년전 사진한장 뽑을때 얼마였는지 기억하세요? 1백20원쯤이었을걸요. 지금은 1백80원이니 60원 오른셈이죠. 20년전 자장면값이 7백원에서 지금 3천5백원으로 5배 뛰었는데 말이죠. 큰 돈벌이가 되진 않지만 굶을 정도는 아니니 꿋꿋하게 지켜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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