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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를 잇는 사람들
[代를잇는사람들](20)
영화관 운영 장순호·희석 부자
3대로 이어지는 영화사랑
이현숙 기자 hslee@hallailbo.co.kr
입력 : 2008. 06.28. 00:00:00

▲도내 첫 현대식 영화관인 '제일극장'을 비롯해 몇해전 문을 연 '롯데시네마'까지 영화관의 역사를 쓰고 있는 장순호(왼쪽)·희석 부자가 영사실에서 필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강경민기자

현대식 영화관 '제일극장'으로 영화 인연
아들은 반대 무릎쓰고 서귀포에 첫 개봉관
손자도 "영화 사랑하는 이들 위해 같은 길"


'처음'이라는 말은 설레면서도 두려운 느낌이다. 그래서 '처음'무엇을 했다는 것은 때로는 '동경'의 대상이 된다.

지금은 영화를 본다는 것이 일상사의 한 부분이지만 수십년을 거슬러 1961년 제주에 첫 현대식 영화관인 '제일극장'이 생겼을때만해도 많은 이에게 '꿈'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일제때 세워진 '제주극장'이 있었지만 변사가 없이 영화를 상영했던 영화관으로는 처음이었다.

지난 25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 있는 영화극장을 찾아간 날 제주의 영화관 역사를 쓰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제주에 그 '꿈의 공간'을 탄생시킨 이는 고 장홍윤씨였다. 그는 황무지 같았던 제주에 3층건물을 짓고 극장 간판을 달았다. 그로부터 47년이 흘렀다. 그동안 한국영화산업은 거대한 발전을 해 왔고 지금은 황금기를 지나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다.

인터넷과 매체의 발달은 영화산업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백영화에서 컬러로, 수동 영사기에서 최신식 영사시스템으로 변화되는 동안 영화관을 지켰던 가족이 있다.

할아버지가 처음 시작한 영화사업을 아버지 장순호씨(58)가 이어받았고 지금은 큰 아들 희석씨(32)가 서귀포에서 첫 개봉관을 열면서 뜻을 함께 하고 있다. 어느덧 3대째. 아버지는 이렇게 회상했다.

"국민(초등)학교 3~4학년때부터 였을 거야. '영화관 아들'이라는 이유때문에 학창시절 내내 인기가 많았지. 학교가 끝나면 함께 극장으로 가려고 친구들이 줄을 섰어."(웃음)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제주에 현대식 영화관을 세운 공으로 1960년대 표창까지 받았다. 이 표창장은 영화관 중앙에 전시되어 있다. "저희가 살던 곳이 영화극장과 가깝다보니 할아버지는 꼭 저를 함께 데리고 영화극장에 가서 둘러보셨어요."

최근 이들 부자는 새로운 실험중이다. 3년전 '서귀포시 첫 복합개봉관'을 연 이후 이곳에 있는 시간이 많다. 서귀포에 종합문화시설을 제대로 갖춰보자는 뜻을 품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아름답다는 제주월드컵경기장이 복합적인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야한다'는 생각을 같이 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현대식 영화관을 제주에 지었을때와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 서귀포에 거액을 투자했을 때에도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솔직히 요즘엔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인구가 적다보니 영화를 보는 발길이 너무 없어요. 그래도 '영화극장이 있어 너무 좋다'는 시민들의 고마운 말을 들을땐 보람도 느낍니다. 응원을 해주는 이들이 많으니 잘 되겠죠."

이들 부자는 오래지 않아 영화관 기자재들을 모아 박물관을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오래된 영사기를 비롯해 예전 자료 등은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잘 이끌어왔는데 제가 잘 해낼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죠.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즐기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누군가 그랬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라고. 이들 부자도 힘겹더라도 '수많은 처음'을 계속 만들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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