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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를 잇는 사람들
[代를잇는사람들](24)해녀 3대 고원형·고정숙·윤순열씨
돌고 돌다 숙명처럼 바다로
문미숙 기자 msmoon@hallailbo.co.kr
입력 : 2008. 07.26. 00:00:00

▲우도의 최연소 해녀 윤순열씨가 물질을 마치고 역시 해녀인 팔순이 넘은 시할머니 고원형씨와 해녀로 살아온 삶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시할머니·시어머니 이어 3대째 한길
"일은 고돼도 바다는 무념무상의 세상"


성산포항에서 도항선으로 15분이면 닿는 섬 우도(牛島).

그 섬의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이들 가운데 해녀 3대 가족이 있다. 고원형 할머니(82)와 그의 며느리 고정숙씨(58), 그리고 손자며느리 윤순열씨(38)다. 취재를 한사코 마다하는 이들을 겨우겨우 설득(?)할 수 있었다.

물 속을 오르락내리락거리는 매 순간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라는 물질을 70년 이상 해온 고 할머니는 우도 최고령 해녀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심폐량이 떨어지며 이제는 가끔씩 야트막한 바다를 찾지만 여전히 '현역' 해녀다.

고 할머니가 물질을 처음 시작한 것은 10살이 채 되기 전이다. 바다를 끼고 사는 섬의 여자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머니의 뒤를 따라 바다에 몸을 던져 숨을 참으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물을 떠나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었던냥 고 할머니는 평생을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왔다.

우도의 해녀 3대를 만나러 간 지난 23일, 고 할머니의 며느리는 마침 몸이 불편해 제주시 병원을 찾은 터라 아쉽게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윤씨는 우도의 최연소 해녀다. 3백50명이 넘는 우도의 해녀 가운데 30대는 윤씨가 유일하다. 50대 후반과 60대 해녀가 가장 많다.

윤씨는 깊은 바다까지 잠수해 들어가 많은 해산물을 잡는 기량이 뛰어난 이른바 '상군' 해녀다. 시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바닷속 길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차고 있는 그녀다. 우도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생활한 그녀지만 어려서부터 해녀가 될 생각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면사무소에서 일하던 그녀가 해녀의 길을 택한 건 24세 때다.

"일본으로 원정물질을 나갔던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집안살림을 꾸려야 했어요. 면사무소를 그만두고 마을사람들 속에 섞여 바다에 몸을 던져 물질을 시작한 게 벌써 15년째네요."

1년에 1백50일은 바다에 나간다는 윤씨는 5㎏쯤 되는 납덩이를 몸에 차고 수심 17m까지 들어가 소라, 전복, 성게, 천초 등을 채취한다. 요즘은 어패류 금채기여서 미역처럼 생긴 해초인 '도박'을 채취해 말리는 작업으로 바쁘다. 부지런히 작업하면 하루에 60㎏정도는 가공회사에 납품할 수 있다고 했다.

"젊은 시절 물질할 땐 무명으로 만든 물소중이를 입었는데, 1970년대부터는 검은 고무옷이 나오기 시작했지. 물 속 일을 오래해서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쑤셔."(고 할머니)

"배운 기술이 잠수라 그런지, 개인적으론 천직이란 생각이 듭니다. 바다에 들어가면 잡념이 사라져요. 이제 다른 일은 못할 것 같아요." 윤씨는 바닷속에선 맘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건축공사업을 하면서 채취한 해산물 운반을 거들어주는 남편 김경철씨와 다투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물속에 들어간다는 그녀다.

고 할머니와 윤씨가 바닷가 바위에 마주앉아 나누는 대화속엔 해녀로 살아온 삶의 변화와 고단함이 자연스레 묻어난다.

해녀일이 천직으로 여겨진다는 윤씨지만 고 할머니가 그랬듯 역시 깊은 물 속에서 숨을 참으며 일하느라 얻은 골병인 두통에 자주 시달린다고 했다.

힘든 일이라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면서 그 명맥이 끊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우도의 해녀 3대는 내일도 물질떠날 채비로 하루를 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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