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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전적지를 가다
['고난의 역사현장'일제전적지를 가다](120)
등록문화재 관리 허술 ①사라봉 동굴진지
문화재 등록 불구 정비· 보존· 활용안돼
입력 : 2008. 10.30. 00:00:00

▲목책이 설치된 사라봉 정상부에 위치한 동굴진지 입구. /사진=이승철기자 chlee@hallailbo.co.kr

갱도 8곳… 총 길이 5백m 규모로 구축
동굴진지 내부 입구 훼손· 안내문 부실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방안 찾아야

# 조사 결과 밝혀진 것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사라봉(표고 1백48.2m) 동굴진지는 태평양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 말기 제주 주둔 일본군이 만든 군사시설이다.

이번 학술조사를 통해 사라봉 동굴진지는 모두 8곳으로 이뤄졌으며, 전체 길이는 4백94m로 약 5백m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제주시 도심권에 위치한 사라봉에 대규모 일본군 군사시설이 구축돼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동굴진지는 정상부에 입구가 위치한 '동굴진지 1'로 그 길이는 2백34m에 이른다. 이 동굴진지는 오름 정상부에서 5부 능선지점까지 입구가 6곳 분포하고 있는 등 복잡한 구조를 보여준다. 오름 사면을 횡(橫)으로 뚫은 형태가 아니라 정상부에서 5부 능선 지점까지 거의 종(縱)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보존상태 역시 비교적 양호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동굴진지 6'의 경우는 입구가 2곳인 전형적인 디귿자(ㄷ)형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길이는 약 72m로 동굴진지 1에 비해 규모는 짧지만 내부의 폭과 높이는 2m 정도로 크다.

나머지 동굴진지의 경우는 길이가 11m에서 58m까지로 소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잡목과 폐드럼통 등 각종 쓰레기가 널려 있는 '동굴진지 6' 내부.

# 실태는 어떻게

조사 결과 사라봉 동굴진지는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훼손 위협에 노출되어 있고 실제 훼손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라봉 동굴진지가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그동안 무관심속에 방치되면서 인위적 자연적 훼손위협에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라봉 동굴진지 일부는 입구에 목책시설이 돼 있지만 이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접근을 막는 수준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외부로부터의 빗물유입이나 토사가 밀려들면서 물길이 형성되는 등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송이층으로 이뤄지다보니 입구 부분은 함몰우려가 높은데다, 소나무 등 나무뿌리가 뻗어내리면서 주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부 환경 역시 나뭇가지나 잡목 등이 들어차 있는 등 불량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동굴진지 가운데 정상부 입구 구간을 비롯 2곳은 산책로 아래 위치해 있어서 서둘러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또한 많은 시민들이 즐겨찾는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입구 부분에 세워진 대형 관광안내문에는 이를 알리는 내용도 없는 실정이어서 아픈 역사현장으로써 교육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상부 입구 부분에 등록문화재임을 알리는 조그만 안내판이 세워져 있지만 내용이 빈약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

# 정비 보존방안은

사라봉 동굴진지 가운데 '동굴진지 1'의 경우는 규모도 큰 데다 구조적 특이성 뿐 아니라 내부 상태도 비교적 양호하다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정상부 입구 부분에 비가림 시설 등을 통해 빗물과 토사유입 등을 막는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또한 일부 구간은 산책로 하부에 위치해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답압(踏壓)에 의한 함몰 및 안전사고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이동 동선을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잡석 등이 들어차고 내부가 차츰 훼손되고 있는 '동굴진지 1'

훼손되기 쉬운 입구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목책 이외의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며, 이미 설치된 목책시설도 어느 정도의 이격이 필요하다.

이처럼 정비 보존조치와 함께 상징적인 곳을 선정 적절한 사전조치를 마련한 뒤 동굴진지 내부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뿐만 아니라 동굴진지 분포지도와 설명문을 넣은 안내판 설치는 물론 사라봉이 제주시의 대표적인 시민공원인 만큼 전시관이나 자료관 건립 등을 통해 역사교육의 장이자 평화의 소중함을 알릴 수 있도록 검토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 김동전 제주대 사학과 교수는 "현재 사라봉 지역은 산책 장소로 많이 활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칠머리당, 국립제주박물관 등 주변 문화자원이 많은 만큼 이와 연계해서 일본의 전쟁야욕을 보여주는 자료관을 마련하여 전시할 필요가 있다"며 당국의 전향적 자세를 주문했다.

/특별취재팀=이윤형·표성준·이승철기자

[미니해설/사라봉 동굴진지는?]제주시 해안 전진거점 진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제주에 주둔하면서 구축한 군사시설의 하나로 '제58군배비개견도 제주도'에 나타난 진지유형별로는 '전지거점진지'로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군은 제주도내 해안과 오름 등지에 4종류의 진지를 구축한다. '복곽진지' '주저항진지' '전진거점진지' '위장진지'가 그것으로 사라봉 동굴진지는 이 가운데 전진거점진지에 해당한다. 전진거점진지란 주저항진지에 접근하는 적의 전개방향을 틀리게 하거나 요점이 적에게 뺏기는 것을 어렵게 하는 등의 목적으로 만든 진지다.

제주시(당시 제주읍) 일대는 알뜨르비행장이 위치한 대정읍 모슬포에 버금가는 대규모 일본군 군사시설이 만들어졌다. 즉 일본군비행장인 제주 동 · 서비행장과 제주 산지항 등이 위치한데다, 해안은 연합군의 유력한 상륙예상지점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이러한 중요성을 반증하듯 제주시 권에는 제58군 사령부와 제96사단 병력 1만1천명이 주둔하면서 군사시설을 구축한다. 사라봉 동굴진지는 제주 북부 해안가에 위치한 진지로서 일본군의 진지구축 실태와 전쟁야욕을 일깨우는 살아있는 역사교육 현장으로 중요성이 크다.

/이윤형기자 yhlee@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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