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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를 잇는 사람들
[代를잇는사람들](38)푸른콩 된장 만드는 양정옥씨 가족
"정직한 재료가 전통장맛 비결"
문미숙 기자 msmoon@hallailbo.co.kr
입력 : 2008. 11.29. 00:00:00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장 제조업체인 '한라산 청정촌'을 운영하고 있는 양정옥·김성주씨 부부와 아들 부부인 김민수·박영희씨는 제주 토종 푸른콩으로 전통의 맛을 지켜가고 있다. /사진=강희만기자 hmkang@hallailbo.co.kr

제주토종 푸른콩으로 장류 생산 10여년
최적의 자연조건서 발효시킨 맛 입소문
"여성 신지식인상·정부 품질인증 자부심"


조물조물 무쳐낸 나물, 호박·고추 등 갖은 야채를 썰어넣어 끓인 국물맛을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된장'이다.

서귀포시 중문동에 자리잡은 '한라산 청정촌'의 양정옥(71)·김성주씨(71) 부부와 아들부부인 김민수(42)·박영희씨(39)는 제주 토종 푸른콩(일명 '장콩')으로 조상 대대로의 맛인 전통장류를 지켜가는 가족이다.

평범한 삶을 살던 양씨가 된장 만들기 사업가로 변신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1994년 난초를 키워 서울의 한 백화점에 납품하던 중에 백화점 관계자가 양씨의 집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었다. "서울양반에게 뭘 대접할까 고민하다 평소 먹던 푸른콩으로 만든 된장국과 젓갈을 정성껏 내놨어요. 그런데 된장국을 두 그릇이나 비우는 거에요. 이렇게 구수할 수 있냐면서."

그 한 마디가 양씨의 삶을 바꿔놓았다. 수 십 년동안 장을 담아온 실력을 발휘해 된장을 만들어 주변에 팔기 시작했고, 구수한 맛이 으뜸인 푸른콩 된장은 차츰 입소문을 탔다.

2000년 장 제조회사를 설립한 양씨 부부는 된장의 원료인 최상품인 푸른콩을 얻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지었다. 3만평의 땅을 임대했는데, 푸른콩은 손으로 수확해야 하는 어려움이 커 계약재배하다 최근엔 수매하고 있다.

장을 만들기 위해 12월 중순쯤 햇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푸른 곰팡이가 잘 퍼지게 볏짚으로 묶어 띄운 후 소금물에 담가 간장과 된장으로 숙성시키기까지 모든 과정이 공들이기의 연속이다. 장의 주숙성장은 최적의 자연조건을 찾아 해발 7백m 중산간에 마련했다. 천일염은 양씨의 남편인 김씨가 직접 비금도에서 사온다. 더욱 농익은 장맛을 내기 위한 고집(?)이다.

그런 노력과 정성 덕에 양씨는 2000년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제주도의 여성 신지식인상을 수상했고, 2003년엔 정부로부터 제주전통장류로는 처음으로 품질인증도 받았다.

사업 초반 농촌여성 일감갖기사업으로 출발한 장 만들기 사업은 이제 연간 30톤의 생산능력을 갖춘 식품회사로 제법 성장했다. 그 사이 2003년부터는 며느리 박씨가 양씨의 장 만들기 기술을 전수받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시골생활이라곤 몰랐던 박씨가 서울생활을 접고 제주 전통장을 담그면서 양씨의 말에 의하면 "장 만들기에 있어서는 나보다 더 까다로운 며느리"가 됐다. 그리고 아들 역시 올해 3월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된장사업에 합류했다.

2003년부터 '맑은 섬 제주'란 통합브랜드로 선보이고 있는 장류는 도내 유통매장과 제주특산품 전시판매장에서 판매중이다. 또 친환경 급식학교 20여곳에도 납품한다.

"어머니는 서울 백화점 등 전국 유통매장의 식품 바이어들 사이에선 꽤 유명하세요. 전국특판행사장을 안돌아다니신 곳이 없으니까요. 그런 어머니의 비법을 이어받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박영희씨)

"토종콩을 이용해 일일이 제 손을 거치는 정성으로 전통된장을 생산하고 규모를 조금씩 키워오는 동안 그 맛을 인정해주는 소비자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돈을 생각했다면 이렇게 까다롭게 만들 이유가 있었겠어요?"(양정옥씨)

1년동안 먹을 된장을 얻기 위해 가정마다 메주를 만들던 왁자지껄함은 분주한 삶과 편리함을 좇는 세태속에 이제 옛 풍경이 됐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어도 전통방식을 그대로 따른 된장이 우리네 밥상에 오르는 반찬의 맛을 더해주는 밑천임엔 변함이 없다. 양씨 가족이 정직한 재료에다 정성을 보태 전통의 맛을 고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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