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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명소]일도2동/두맹이골목
어릴적 뛰놀던 추억,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이정민 기자 jmlee@hallailbo.co.kr
입력 : 2010. 02.27. 00:00:00

▲제주시 일도2동에 위치한 두맹이 골목은 아련한 옛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어릴적 뛰놀던 기억을 회상할 수 있는 곳이다. 아직까지 덜 알려져 있지만 한번쯤 찾아볼만한 곳으로 충분하다. /사진=강희만기자

낙후된 동네에서 가 볼만한 곳으로 변신
벽면 곳곳의 그림은 어린시절 추억 가득

"이 사업의 최초 아이템은 이 골목이 포함된 일도2동을 지역구로 하는 오영훈 도의원의 제안에 의해서 이뤄졌다. 제주도에서 어쩌면 가장 난해하고 낙후된 동네의 하나인 일도2동의 주택지역인 이곳을 가장 볼 만한 골목으로 바꾸어 보자는 제안에 솔깃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제안에 동의한 우리는 여름 땡볕에 현장을 방문하면서 답사하고, 주민들과 인터뷰를 해가면서 또는 역사적인 자료를 뒤적이면서 이 동네의 설촌 유래부터, 두맹이란 명칭까지 찾아냈다."<'제주시 일도2동 두맹이골목 공공미술프로젝트 보고서' 중에서>

'골목'의 사전적 의미는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을 지칭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골목은 친구들과 어린 시절을 보냈던 추억의 장소로 가슴속에 남아있다.

2008년부터 공공미술프로젝트로 추진된 제주시 일도2동 두맹이골목. 지난 해 말까지 1·2차에 걸쳐 두문1로부터 구중 1·2로를 거쳐 구중샛길까지 약 1km에 달하고 직접 걸어보면 20~30분 정도면 충분하다.

두맹이골목은 아스팔트 포장이된 바닥때문인지 오래된 골목의 느낌은 덜한 편이다. 하지만 벽면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은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동네 구석에서 말뚝박기 하는 아이들, 딱지치기를 비롯해 축구공을 들고 전봇대 뒤에 숨어있는 아이는 처량함과 함께 무언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남은 방학기간이 아쉬운 듯 어린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골목이 좁아서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아이들이 길을 막고 공놀이를 하기도 한다. 또 중간에 만나는 자그마한 동네 슈퍼는 '잠시 들러 얼음과자라도 하나 사먹어 볼까'하는 여유로움마저 준다.

2차로 조성된 구역 벽면에는 동초등학교, 일도초등학교, 인화초등학교 등 근처 학교 어린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타일로 구워 붙여져 있다. 생각이 제각각인 어린이들이 마음대로 그린 그림들이어서인지 담고있는 사연들도 제각각이다. 백영종 일도2동주민자치위원장은 "어린이들이 지역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직접 그린 그림을 부착하는 작업을 벌였다"고 소개했다.

골목을 걷다가 중간에 또 다른 좁은 골목으로 빠지면 두맹이 쉼팡이 있다. 예전에는 이 곳에 다 쓰러져가는 초가가 흉물스럽게 자리하고 있어 주민들에게 골칫거리가 됐다고 한다. 때문에 두맹이골목을 조성하며 초가를 허물고 두맹이 쉼팡을 만들었다. 100㎡내외의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졌고 벽에는 두맹이골목 소개와 아톰, 홍길동, 코난, 둘리, 하니 등 어린시절 즐겨봤던 만화(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두맹이골목은 '기억의 정원'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만큼 곳곳에서 추억의 때가 묻어난다. 1차 구간(319m)이 주로 환경개선쪽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2차 구간(700m)은 주민들의 소통과 공동체 의식 함양에 주안점을 두고 추진됐다. 양석하 일도2동장은 "골목을 관광상품화해 많은 사람들이 찾도록하고 경제적 소득창출의 효과보다는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적인 공간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며 "다음 달 두맹이 복지회관 건설이 마무리되면 두맹이골목 프로젝트가 비로소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두맹이골목을 걷다보면 양옆에 1960년대쯤에 지어진 집들이 많이 보인다. 골목도 좁다. 그만큼 골목이 오래됐다는 뜻이 될것이다. 이렇게 오래된 골목에 '추억'이란 옷을 입힌 곳이 두맹이골목이다.

두맹이 골목은

제주시 동초등학교 남쪽, 현재 일도2동주민센터의 북쪽에 해당하는 곳이다.

'제주시의 옛지명'(1998년)에 의하면 구중동과 두문동으로 구중의 중을 '重'이라고 펴기하는데 옛날 높은 사람이 다니던 길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그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두문동은 구중동네 동쪽으로 돌이 많아 '두무니머들'이 와음된 것으로 옛날 이곳에 나무가 없을때 잡초를 이용해 불사르던 가시덤불과 무덤·골총 등이 얽혀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두무니세', '두무니슬'이라고도 하며 원래는 주성밖의 공동묘지였다가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슬'이라는 이름이 붙고 두문동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두맹이골목 구간인 구중로와 두문로는 조선시대 성동의 공동묘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마을 형성의 역사는 성안보다는 오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쓰러져가는 초가를 정비해 조성한 두맹이 쉼팡.

제주성의 해체가 1910년대에 이뤄졌다고 볼때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00년 정도이고 두문동까지 마을이 번성하게 된 것은 1970년대로 추정된다.

두맹이골목 명칭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마을 어르신들과의 인터뷰에서 얻은 속명을 토대로 착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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