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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25時]굼뜬 행정, 숨기는 행정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입력 : 2010. 03.23. 00:00:00
최근 독자들로부터 민원성 전화를 받는 일이 많아졌다. 민원은 주민이 행정기관에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것인 만큼 행정이 처리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요구해도 들어주질 않아 기자를 찾아 전화했던 것일 테니 쉬이 흘려들을 수 없다. 듣자하니 아닌 게 아니라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가게 앞 일주도로에서 사고가 너무 많이 나서 격등제로 운영하고 있는 가로등을 모두 켜달라고 했는데 답변이 없어요." "불법 주정차 차량들로 시야가 가려 교통사고가 많은데 단속을 안해요." "생활하수가 하천에 그대로 방류돼 민원을 제기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요." "배도 없는 포구에 수십억을 쏟아부어 방파제 건설공사를 계속 하기에 마을에서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더니 멈췄다가 또 해요."

그러고선 꼭 한번 현장을 찾아와달라고 통사정을 하기도 한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홍반장'도 아니고 담당 취재지역도 아니어서 모두 찾아볼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여기까진 최근 겪은 굼뜬 행정의 사례다.

취재를 하다 보면 우연찮게 입수하게 되는 정보가 있다. 하지만 정보는 정보일 뿐 사실 확인을 위해서는 문서와 데이터베이스가 필수다. 그런데 행정기관이 문서와 데이터를 순순히 내줄 리 만무해서 심심찮게 활용하게 되는 것이 정보공개청구 제도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쌓은 노하우로 최근 해당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평소 하던 행태로 봐서 예상했던 것처럼 역시 일부 비공개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행정이 비공개 사유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중 한 조항을 제시했는데 확인 결과 원래 법 조문은 그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자료를 숨기기 위해서 관련 법 조항까지 왜곡하는 행정이다. 숨기고 거짓말하는 행정의 사례다.

굼뜨고 숨기고 거짓말하는 행정을 자주 접하다 보면 싸워야겠지만 민원인들은 포기하는 일이 더 많다. 그나마 전화를 걸어온 독자들은 언론이 행정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할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다. '본의' 아니게 이 같은 민원인들의 제보와 요청에 의해 최근 비판기사를 쓰는 일이 잦아졌다. 그랬더니 해당 기관 고위공직자들이 얼굴을 대할 때마다 "무슨 부에난 거 이서?", "누가 섭섭허게 허맨?"하고 물어온다. 세상을 바꿔보려는 거대한 의지가 있어서도 아니지만 개인 감정을 이유로 기사를 쓰는 일은 더 더욱 없다. 그저 언론에 희망을 갖고 있는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사실이 확인되면 기사화하고 있을 뿐이다.

앞에 언급한 가로등 문제를 빼먹을 수 없다. 최근 교통사망사고가 급증해 경찰이 요구하자 행정은 즉시 이를 수용해 가로등 격등제를 해제했다.<표성준 제2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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