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강문규칼럼
[강문규 칼럼]'바보 노무현'과 莊子의 꿈
입력 : 2010. 05.25. 00:00:00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가 되던 날도 지난해처럼 비바람이 불었다.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다 군사독재 시절 유리창에 호호불고 '자유'와 '민주'라는 글을 쓰고 나즈막히 그 이름을 불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민주와 자유라는 말은 모든 꽃이 피어나고 열락(悅樂)의 새가 우는 아름다운 봄날과 같은 세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봄날을 꿈꾸는 것 조차도 군부독재는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레드 콤플렉스도 도처에 만연했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은 물론 김지하 시인의 '오적'이나 제주출신 작가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 등도 불온서적으로 묶였다. 정권의 눈엣가시였던 김대중 야당 총재의 강연을 접하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다. 계절은 바뀌어도 툭하면 정부는 공안정국을 펼치며 국민들을 사시나무처럼 떨게 했다. 한국적 민주주의를 만든다며 긴급조치를 발동하며 민주투사와 야당 인사, 젊은 대학생들을 무차별 검거했다. 이처럼 엄혹한 시절에도 '자유'와 '민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버렸던 이들의 고귀한 이름을 불러본다.

KBS의 9시 뉴스를 시청자들이 '땡 전 뉴스'라고 불렀던 것도 그 때였다. 9시를 알리는 시계의 땡소리와 함께 뉴스진행자는 엄숙한 표정으로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되는 톱뉴스를 시작했다. 어떤 언론도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지 못했다. 정론직필을 외치던 일부 기자들은 정권과 맞서 언론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언론의 자유'를 위해 자신들을 희생했던 이들을 기리며 언론의 존재와 그 가치를 되새겨본다.

겨울이면 하늬바람 불듯이 '북풍(北風)'은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불어왔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국내에 암약하던 대규모 거물 간첩단이나 국가를 전복하려했던 불순한 일당을 검거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정부의 발표를 들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몰표로 여당 후보들을 선출했다. 그것은 하나의 잘짜여진 각본이었다.

북측에서 남쪽을 향해 도발을 해 올 때도 있었다. 그러면 정부와 집권 여당은 한 목소리로 국가안위와 민생안정을 위한 국민궐기를 부추기며 야당과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그럼에도 남북의 평화통일을 향한 집념어린 모색은 계속됐고 어느날 남북통일의 문이 기적처럼 열리기도 했다.

창 밖을 보다 문득 장자(莊子)의 꿈을 떠올려본다. 장자는 노자와 더불어 도가사상의 양대 거목으로 불리어지는 춘추전국시대의 인물이다. 그는 어느날 꿈에서 나비가 되어 꽃 밭을 날아다녔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나니 자신은 나비가 아니라 장자가 되었다. 장자는 생각에 잠겼다. 방금 꿈에서 나비가 되었을 때는 내가 장자인지 몰랐다. 그런데 꿈에서 깨고보니 장자가 되어 있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장자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가라는 내용의'나비의 꿈' 말이다.

민주정부라는 지난 10년간 민주와 자유, 평화와 통일, 인권과 원칙의 물결은 온 나라에 넘실거렸다. 그 누구도 그런 세상이 후퇴할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런 낱말들은 서리맞은 배춧잎처럼 시들고 생명력을 잃고 있다. 언제 그런 열락의 봄이 있었는가 싶다. mb정부는 불과 2년여 사이에 그것들을 불도저처럼 밀어버리고 있다. 그러면 자유와 민주,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구가하며 살았던 세상은 신기루였던 것일까. 그건 '바보 노무현'과 같은 이들이나 꿈꾸며 실현하려고 했던 한 여름밤의 꿈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논설실장>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