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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규칼럼
[강문규 칼럼]제주섬의 러브 스토리
입력 : 2010. 07.06. 00:00:00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러브 스토리가 없던 시절은 없었다. 사람의 인생도 따지고 보면 만남과 이별, 사랑과 증오, 비애와 환희로 짜여진 하나의 직조물이나 다름 없다. 검은 현무암으로 뒤덮인 제주섬에도 많은 러브 스토리가 깔려 있다. 제주신화에 등장하는 자청비와 문도령의 사랑은 어떤가. 우연히 개울가에서 만난 문도령에 반해 삼년을 함께 서당에서 공부하면서 남 몰래 사랑을 키워온 여인, 그리고 마침내 사랑을 이뤄낸 여신(女神) 자청비의 이야기는 어쩌면 제주 여인네들이 꿈꾸어 왔던 로망은 아니었을까.

그런 사랑의 신화가 흐르는 섬에 피어난 홍윤애와 조정철(1751~1831)의 비련은 또 어떤가. 유배 온 청년 정철에 대한 연민은 어느새 연모의 정으로 타오르고, 그것은 조씨 가문과 대립하며 처형을 위한 올가미를 놓으려 했던 정적들에게는 쾌재를 부를 만한 일이었다. 젊은 유배객과 적소(適所) 주인집 딸과의 사랑이 무슨 잘못이 있으랴. 그럼에도 고문을 하며 억지로 죄목을 들춰내려 했던 정적들의 의도를 죽음으로 거부하며 사랑하는 이를 지킨 홍윤애의 순애보는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 때문에 죽고 묻히던 날 새벽 장지로 떠나는 상여소리를 들으며 조정철은 옥에서 시 한 수를 짓는다. '귤나무 우거진 성 남쪽 석자 분묘/ 젊은 혼 천년토록 원한 남으리/ 산초와 계수나무로 빚은 술은 누가 드릴까/ 한 곡조 슬픈 노래에 절로 눈물 고이네'(橘柚城南三尺墳 芳魂千載至怨存 椒漿桂酒誰能奠 一曲悲歌自淚痕). 이야기는 극적인 반전을 이룬다. 27세에 제주에 온 뒤 무려 27년간 귀양살이 하다 유배에서 풀려난 정철은 관직에 복귀한 뒤 다시 제주목사로 내려 온 것이다. 그는 가장 먼저 지금의 제주시 전농로에 있는 홍윤애의 무덤을 찾아 술잔을 올리고 그녀를 추모하는 글을 빗돌에 새겨 남긴다. 제주의 유배문화 속에 담겨진 비련의 러브스토리다.

또 다른 색조의 러브 스토리도 있다. 옛날 표선면 성읍리 지경에 있는 좌보미오름에 잘 생긴 두개의 큰 바위가 서 있었다. 형상이 마치 남녀를 닮아 사람들은 이를 부부석(夫婦石)이라 불렀다. 그런데 어느해 폭우가 쏟아지며 이들 바위가 오름에서 떠밀려 개울로 내려가게 됐다. 큰 비가 올 때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부부석은 어느 해 큰 물살에 의해 남자석은 마을안 연못인 '도리못'가에 머물렀는데 여자석은 '진빌레'에 걸쳐져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마을에 흉년이 들고 흉사가 이어졌다. 마을사람들은 그 원인이 부부석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마을안 '도리못' 가에 있는 남자석이 밤이 깊으면 섧게 운다는 소문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이런 소문이 퍼지며 아랫동네는 '진빌레' 여자바위를 '도리못'으로, 웃동네에서는 남자바위를 '진빌레'로 옮기겠다고 서로 다투다 결국 아랫동네인 지금의 수산1리로 옮기게 되었다. 이들 부부석은 지금 '도리못'이 있었던 마을사무소 앞 게이트볼장 옆에 누운 채로 남아 있다.

부부석 이야기는 오늘의 세태에도 많은 일깨움을 주고 있다. 제주에는 지난해 1469쌍의 부부가 이혼했다. 부부가 갈라서면 그게 어디 본인들 만의 문제인가. 자식들에게 큰 상처를 끼치고, 양 집안에 끊임 없는 근심 걱정을 안겨준다. 그야말로 가능하면 막아야 할 흉사다. 갈라진 부부석은 마을사람들이 나서 한 곳으로 옮겨 뭉치게 함으로써 더 이상의 불행을 막았다. 우리 사회도 그런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위기에 처한 부부들도 한번쯤 부부석을 찾아가 소중한 일깨움을 얻을 일이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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