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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
[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16](4)제주의 배-③덕판배와 라파엘호
'덕판배는 왜 제주배인가' 실체 탐색 나서야 할 때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입력 : 2010. 09.06. 00:00:00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성 김대건신부 제주표착 기념관' 야외에 전시중인 라파엘호. 1999년 복원된 라파엘호는 제주 덕판배 복원품을 만들었던 목수가 제작에 참여했다. /사진=진선희기자

한선 라파엘호와 제주 덕판배 동일인이 주도적으로 복원
건조법 기록 등 없는 덕판배…고증자료 발굴 등 서둘러야


차귀도가 눈앞에 걸리는 그곳에 배 한척이 놓여있었다. 라파엘호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중국 상하이항을 출발해 서해 바닷길로 귀국하다 제주에 표착할 당시 탔던 배를 복원해놓은 것이다. 라파엘호는 지금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마포나 한강 나루서 라파엘호 구입

김대건 신부는 부제 시절에 무동력 목선 한 척을 구입한다. 한국 천주교회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던 시기에 조선교구장인 페레올 주교의 입국을 위한 해로 개척 등에 사용할 배였다. 훗날 라파엘호로 명명된 배는 1845년쯤 마포나 한강 나루의 어느 곳에서 사들여 우여곡절끝에 상하이항에 도착한 이후 다시 인천항으로 귀국하는 길에 페레올 주교와 김 신부 일행을 싣고 온다.

이 과정에서 거친 파도와 바람에 라파엘호가 제주 해안에 표착하는 일이 발생한다. 천주교제주교구는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 일행이 귀국길에서 첫 발을 내딛은 땅이 제주 해안이라는 점을 기려 라파엘호 복원 작업을 벌인다.

라파엘호는 어떤 배였을까. 승선했던 페레올 주교가 쓴 편지글에는 라파엘호의 외형이 다음과 같이 그려져있다. "그 배는 길이가 25자(7.5m), 너비가 9자(2.7m), 깊이가 7자(2.1m)입니다. 이 배를 건조하는 데는 쇠못 한 개도 들지 않았고, 널판은 나무못으로 이어져있습니다. …엄청나게 높은 돛대 두 개에는 서로 잘 꿰매지지 않은 거친 광목으로 된 돛 두 폭이 달려있습니다. 뱃머리는 선창까지 열려있는데, 그것이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갑판의 일부분은 자리로 되어있고, 일부분은 아무런 고정기구도 없이 그저 잇대어 죽 깔아놓은 나무판자로 되어있습니다. 거기다가 배 안으로 들어가는 구멍 셋이 있습니다."

제주교구는 편지글 등을 토대로 라파엘호 복원에 나선다. 제주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였다. 관련 전문가의 연구 결과 실제 배의 길이나 너비는 편지글 내용보다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교구는 1999년 성산읍 오조간이조선소에 의뢰해 라파엘호를 복원했다. 오조간이조선소 대표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천년씨. 1996년 덕판배 복원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배 목수였다.

▲신라시대의 배 모양 토기. 고대 선박의 형태와 당시의 항해 기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물이다.

▶"규모만 다를 뿐 큰 차이 없는 배다"

라파엘호 복원 당시 그것이 어선 겸 화물선으로 나무못으로만 건조된 목선이라는 점, 배 밑의 구조와 선수· 선미의 모양이 평판형이라는 점 등을 들며 전통적인 한선의 특징을 보인다고 했다.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 전시실에도 라파엘호가 한국의 전통적인 재래식 배의 구조대로 두껍고 평탄한 저판을 밑에 깔고 외판을 붙인 다음 선체 횡강력을 유지시키는 구조물인 가룡목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지어졌다고 소개됐다.

배는 저마다 다른 해안 지형의 특성을 반영해 건조된다.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제주배'라는 이름으로 한선과 구분지어 제주의 전통배를 탐색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라파엘호와 덕판배 복원품에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라파엘호 복원 작업을 도왔고 이 배를 이용한 해상 순례에 참여한 적이 있는 채바다 시인(성산읍 시흥리 바다박물관장)은 "라파엘호는 국립제주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었던 덕판배보다 규모가 크게 복원된 배라고 여기면 될 것"이라며 "라파엘호에 제주 덕판배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덕판배와 라파엘호는 동일한 인물에게 복원이 맡겨졌다. 천주교제주교구의 복원 기록엔 라파엘호가 한선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했다. 반면 덕판배의 남다름을 주장하는 이들은 "덕판배는 육지의 배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이런 현실에서 덕판배 복원품은 해체되고 제주 바다로 떠밀려왔던 라파엘호 복원품은 남았다. 현재까지 덕판배는 제주배를 상징하는 이름중 하나다. 그럼에도 왜 덕판배가 제주배인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예순살까지 직접 배를 건조했다는 제주시 이호동 김용중씨(73)는 어릴적 보고 들은 내용을 떠올리며 "덕판배 만드는 법이 어느 하나로 정해진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마을마다 제 형편에 맞게 덕판배를 만들고 사용했다는 것이다.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가문동 출신인 김씨는 추자도에서 배를 건조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서른 살이 넘어 배 목수를 했다. 덕판배 실물이 오래전에 사라진 현재로선 김씨처럼 그 배를 기억하는 증언자를 더 많이 찾아내는 등 고증 자료 발굴에 나서야 한다.

배는 바다로 가는 징검다리
떼배 넘어 숱한 배의 사연에 주목을


전라남도 목포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야외엔 우리나라 전통배가 전시되어 있다. 해당 지역 목수들이 직접 지은 배다.

전남 신안군 가거도 지역의 멸치잡이 배인 가거도배, 경상남도 남해안 지역의 고기잡인 배인 통구마니배, 서해안의 새우잡이 배인 멍텅구리배, 전라도 영산강 일대에서 고기잡이 배를 하던 소형 안강망어선의 닻이 보인다. 제주배로는 떼배가 나왔다.

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0년 베트남 젊은이 5명이 우리나라까지 타고 온 배가 있고, 2008년 중국인 11명이 탔던 배도 전시됐다. 모두 밀입국에 이용된 배다. 실내 전시관에는 전남 신안 해저에 침몰했던 중국 무역선을 복원해 무역품과 함께 펼쳐놓았다.

▲바다박물관이 지난 4일 진행한 떼배 체험.

배는 바다와 인간을 연결시켰던 대표적 해양유산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전시된 배들은 해양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

제주는 어떤가. 배는 바다를 끼고 사는 제주의 역사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꿰고 다듬어야 할 유산이다.

진상품인 제주마를 실어날랐다는 덕판배, 예고없이 바다밖 세상과 맞닥뜨리게 했던 수많은 표류선과 표착선, 유배인들이 눈물을 머금고 제주 바닷길을 건넜던 한선 등 바다에 몸을 실은 배들은 수많은 사연을 싣고 포구를 떠났다가 되돌아오거나 세상과 영영 이별을 했다.

이호테우축제처럼 떼배에서 시작된 제주배의 '현재화' 작업은 여러 유형의 배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산지천 중국 피난선, 하멜 표착선, 김대건 신부의 라파엘호 등 제주 바다로 찾아든 배만이 아니라 제주사람들이 만들어 이용했던 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덕판배도 이름없는 제주 백성들이 썼던 배였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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