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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고픔은 참을 수 있지만 존재의 가벼움은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제주사회를 보면서 종종 그런 생각에 잠긴다. 제주도민의 소득수준은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감귤산업 등에 힘입어 전국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소득수준을 보였다. 그런데 90년대 들면서 역전현상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방자치의 부활(復活)과 함께 왔다. 지방자치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결정하고 개척해 나가는 제도다. 지역의 발전과 주민들의 삶의 질을 지역 스스로 고민하며 향상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동시에 주어졌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빛과 어둠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다른 시도들은 지역의 부존자원을 바탕으로 인맥을 총동원해 예산을 확보하고, 의욕적인 발전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2년 전 오랫만에 육지부를 돌아보면서 상전벽해처럼 변하고 있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럼 제주는 어떤가. 남들이 치열하게 지역발전전략을 모색하고, 이를 가시화해 나갈 때 제주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 문제는 여러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도출될 사안이기는 하다. 하지만 콕찍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지역의 지도자를 잘못 만난 탓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부존자원이 빈약하고 인맥도 넉넉치 못한 제주가 아닌가. 그런데 자신들의 재선을 위해 선심성, 또는 전시성 사업에 탕진해 왔다. 여기에는 지방의원들도 한몫 거들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도정의 곳간은 텅텅 비어가고 2000년대의 제주에 때 아닌 춘궁기(春窮期)가 도래할 판이다. 참으로 제주의 앞날이 우려스럽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자원을 바라보는 안목과 그것을 지역발전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지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에게 보석은 돌처럼 여겨진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도 한때 그랬다. 금광석을 백인들이 건네는 옷가지와 바꾸기도 했다. 서구열강의 아프리카 침탈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 결과는 식민지 지배로 나타났고, 독립된 지금에도 후유증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 이게 남의 일인가. 최근 국내 가장 대표적인 혁신도시로 평가되고 있는 전남 함평군의 나비축제는, 제주시 애월읍에서 채집한 '배춧잎나비'와 유채꽃을 자원화 해 지역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함평군 만이 아니다. 부산시에서는 제주해녀를 해양도시 부산의 상징적 자원으로 키워나가고 있다. 이들은 제주해녀들이 집단거주하는 영도구를 중심으로 몇년 전부터 해녀자원화를 추진해 왔다. 어디 이 뿐인가. 최근 강원도와 경북 영천, 전북 장수군에서는 말산업육성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소식들이다. 배춧잎나비와 유채꽃은 제주의 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풍물자원이다. 800년이 넘는 대규모 목장사를 기록하고 있는 말은 제주도민과 애환을 같이 해온 반려동물(伴侶動物)이기도 하다. 해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제주의 보석과 같은 자원들이 다른 지방의 곳간을 채우는 자원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제주에는 관심있는 전문가와 관련 주민들이 모여 제주마산업 육성방안을 논의하고 해녀의 보존과 자원화를 모색하기 위한 세미나를 열고 있다. 여기에는 제주의 자원들을 사장시키지 않고 제주의 보석으로 키워나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 나온다. 하지만 공허함도 베어난다. 잠깐 개회식에 참석했던 도정관계자나 도의원들은 금새 자리를 비운다. 공사다망 하거나 제주의 보석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안목 때문이다. 그들은 왜 존재하는가. 그래서 배고픔은 참을 수 있지만 자원육성에 관한 관심과 정책을 갖추지 못한 도정과 의회의 존재의 가벼움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논설실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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