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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마케팅이 경쟁력이다]3. 전통자원이 세계를 부른다/이탈리아 베로나·경북 안동
전통에 최신 트렌드 더하니 고부가가치 상품 변신
표성준 기자 sjpyo@hallailbo.co.kr
입력 : 2010. 11.12. 00:00:00

▲문학과 오페라의 도시 베로나는 전통에만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접목시킨 뒤 수백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로마시대 격투장(사진 왼쪽)을 오페라 극장으로 탈바꿈시키고 로미오와 줄리엣(사진 오른쪽)의 소설 속 이야기를 물질화시켜 관광지로 승화시켰다. /사진=공동취재단

베로나 - 유무형의 전통자산에서 노다지가 쏟아지는 곳
안동시 - 전통 관광상품으로 지역활성화시킨 대표적 사례

때론 잊혀졌던 유무형의 전통자원 속에서 노다지가 쏟아지는 경우가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이탈리아 베로나는 소설 속 이야기에 착안해 줄리엣의 집을 만들고, 로마시대 격투장으로 이용했던 아레나 원형극장을 오페라공연장으로 탈바꿈시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상북도 안동시가 고택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해 많은 내외국인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문학과 오페라의 도시 베로나

겔프당(교황당)과 기벨린당(황제당)으로 나눠 투쟁과 반목이 이어지던 13~14세기 이탈리아. 북부도시 베로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셰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베로나에서 일어난 이 투쟁을 모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베로나는 과거의 비극 속에서 현재의 희극을 창조해냈다. 한 공무원의 작은 아이디어가 도시를 바꿔놓은 것이다.

지난 1920년대 베로나시청 직원 안토니오 아베나는 도심에 위치한 중세시대의 저택을 눈여겨봤다. 14세기에 지어진 '카펠로(Capello)' 가문 소유의 저택이었는데 아베나는 이 가문의 성이 줄리엣의 집안인 '캐풀릿(Capulets)'과 비슷한 점에 착안해 소설 속 이야기를 물질화시켰다. 원래 저택에 없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의 밀어를 나누던 발코니를 만들어 '줄리엣의 집'이 탄생했다. 신화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사고에서 비롯됐다.

이후 이곳을 배경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가 찍혔다. 시에서는 따로 홍보활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현재 줄리엣의 집에는 1년에 200만명 정도가 방문한다. 정원은 무료로 개방하지만 발코니는 유료인데 200만명 중 23만명 정도가 이 발코니를 이용했다. 한 연구기관이 분석한 결과 줄리엣의 집은 1유로의 관리비로 6~7유로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행정기관이 사기를 쳐서 돈을 벌어들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베로나시는 허구라는 사실을 공개하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 줄리엣의 집은 모두 허위이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사랑의 마음만은 진심이다. 이 때문에 줄리엣의 집 내부는 장식을 최소화했다. 허구를 너무 사실화하면 진심이 사라질 것을 우려한 시의 마케팅 전략이다. 물질이 아닌 정신을 파는 방법이기도 하다.

베로나는 오페라도시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아레나 원형극장은 로마시대 검투장으로 이용됐던 곳이다. 그런 아레나가 오페라 공연장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지난 1913년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아이다'가 초연되면서부터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로마시대 유적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활용하기 위해 매년 7~8월이면 오페라축제도 열린다.

오페라 공연만으로 아레나를 활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대중음악에도 문호를 개방해 다양한 음악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낮에는 유적과 관광지로 밤에는 공연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된 것이다. 고전에만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여 접목시킨 결과 현재 연간 아레나 방문객수는 50만명에 달한다.

▲조선말기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한옥 수애당. 남향인 대문채를 들어서면 담장으로 구획된 장방형의 행랑마당이 나타나고, 담장 사이로 난 중문을 들어서면 'ㅡ'자형의 정침과 'ㄱ'자형의 고방채가 안마당을 두고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수애당 안주인 문정현씨는 장이 제대로 발효되도록 왕소금과 숯, 황토를 차례로 쌓은 뒤 자갈을 깔고 장독대를 올려놓았다.

▶안동시 고택 체험프로그램

우리나라에서 전통을 살린 관광상품으로 지역을 활성화시키고 있는 대표적 사례로는 경북 안동시 고택 체험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다. 도시민은 물론 외국인에게까지 한국적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고택 체험은 한옥만이 줄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이다. 안동의 크고 작은 47개 종택과 고택을 찾는 관광객은 2008년 5만명에서 2009년 6만5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27개 주요 고택에서 숙박을 체험하는 관광객도 연간 약 6700명에 달한다. 하루 17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택과 종택, 사찰은 주말이면 방을 구할 수 없을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유교문화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임하호변에 자리잡은 한옥 수애당(水涯堂). 3동의 건물에 29간으로 구성됐는데 1985년 경북 문화자료 56호로 지정된 뒤 1987년 임하댐 수몰로 현재 위치로 이건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류효진씨가 제주 출신 부인 문정현씨와 98년 귀향 후 자신이 살던 집을 손봐 일반에 공개해 고택 체험 한옥으로 유명세를 치르게 됐다.

10년째 고택을 운영 중인 류씨는 수애당에 전 재산을 걸다시피 했다. 기와를 보수하는 데만도 1억원이 소요됐으며, 전통가옥의 단점인 부엌과 화장실, 세면장을 개조하고, 방과 대청마루는 황토와 천연도료로 마감했다. 11개 객실을 운영하는데 방문객수를 집계하진 않지만 올 여름(7~8월)에만 약 1600명이 다녀갔다. 외국인이 10% 정도를 차지하는데 일본관광객은 20명 정도 단위로 오는 경우가 많고, 유럽에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프랑스에서 특히 많이 찾아오고 있다.

이곳 장독대는 왕소금과 숯, 황토를 차례로 쌓은 뒤 자갈을 깔아 땅과 하늘의 기온을 잘 흡수하도록 했다. 한옥과 어우러진 친환경 농산물로 만든 전통의 맛 한식은 고택 체험의 백미다. 반면 고택 개방 초기 민속놀이 등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했던 류씨는 이젠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비용이 높아지는데다 가족이 운영하는 고택이어서 일손이 달렸기 때문이다. 대신 한옥 본연의 기능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많이 체험하는 것보다는 친절하게 응대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에 사람들이 고택의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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