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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아이와 격납고 ▲초등학교 2학년 아이다. 저 아이에게 이 콘크리트 더미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저 아이가 10여 년을 훌쩍 커서 지금보다 훨씬 퇴락했을 격납고를 보게 되었을 때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다음 100년은 저 아이도 뛰어넘어 그 다음 세대쯤 돼야 할 것이다. # 데자뷰 100년 최근 한반도는 출렁이고 있다. 국민 모두를 놀라고 걱정하게 만든 연평도 포격사건 말이다. 민간인 희생자까지 낸 이 사건의 징후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문제는 그 징후를 감지하지 못한 무능이나, 징후를 징후로 읽어내지 못하는 무능 중의 하나일 것이다. 현재 남북의 분단체제는 휴전체제다. 종전이 아닌 휴전체제는 언제든 개전과 확전으로의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휴전이 의미하는, 일어나지 말길 바라는 그 많은 예상되는 사건 중 하나가 연평도에서 벌어진 것이다. 하필 경술국치 100년의 해에 우리는 또다시 국치를 만나고 만 셈이다. 그것은 북에게 두드려 맞았다는 그런 류의 부끄러움이 아니다. 3대가 지나, 이제 역사가 되어 버려야 할 것들이 현실의 거리에서 일터에서 삶에서 지독한 공포와 묵시록적인 내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그런 뜻밖의 데자뷰 말이다. 100년 전 질풍노도 같은 서세동점의 시기, 안팎으로 사면초가였던 신생 대한제국은 결국 제국주의 일본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 36년간 식민지배를 받으며, 우리 민족은 크나큰 고난의 길을 가야 했고, 해방 이후에도 엄청난 참극과 왜곡된 사회체제를 지니게 되면서 후손들에게까지 그 역사적 책임을 물게 하는 부끄러움을 남겼다. 국치는 계속되고 있다. 국민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빤히 알고 있는데도 FTA 통상교섭본부장은 뻔뻔하게도 말을 바꿔가면서 마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다는 듯이 자기는 국익을 위한 협상에 충실히 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를 보면서 100년 전 조정의 어느 외무대신이 떠오르는 것은 외교와 협상에 일천한 필자만의 느낌일까? 그 대신들은 나중에 단체로 일제의 작위를 받았고, 은사금까지 챙겼다. 필자가 보기에는 왕조시대 같으면 성질 급한 군주는 당장 어전에서 자진을 요구했을지도 모를 졸속협상을 했을 뿐이다. 아마도 그가 이야기하는 국익이 있다면, 그것은 그 자신이 또 다른 식민의 영혼이 되었음을 입증하는 일에 다름 아닐 뿐 그 국익에는 국민도 기업도 경제도 포함되지 않는다. 최근의 이 모든 상황들은 100년 전에 우리의 선조들이 경험했던 일의 데자뷰일 뿐이다. 저무는 팍스아메리카나의 시대,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는 시대, 석유고갈의 시대, 세계화된 경제의 동맥인 금융이 위기를 맞은 시대, 새로운 미래비전과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대, 마치 100년 전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당시 고종은 나라를 제대로 바꾸자는 동학농민을 절멸시켰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없어 그 자신도 절멸 당했다. 사실 그들은 적이 아니었다. 근대국가 대한제국이 새로운 시대를 돌파하는 데 있어 함께 해야 할 파트너이기도 했다. 그런 그들을 고종은 외국군대까지 빌어다 절멸을 시켰던 것이다. 당시 이미 나라 밖은 급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을 꿰뚫지 못했던 그들에게 시대적 한계라는 면죄부만을 되뇔 수는 없다. 그것은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는 권력을 틀어 쥔 왕조와 권부들의 무지와 무능에 의한 책임이 더 큰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좌표 잃은 100년 전의 풍경이 자꾸 걱정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최근의 우리나라를 둘러싼 모든 일들이 그와 다르지 않은 탓이다. 골목상권까지 집어 삼키는 자본주의 양반들인 대기업들의 후안무치한 도륙질과 아이들의 무상급식을 망언으로 답하는 모 시장의 행태가 어쩌면 이리도 당시 양반과 탐관오리들의 행보와 빼닮았는지. 부끄러움은 거기에서 온다. 무려 100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이 사회는 한 치도 앞서가지 못하고 말았다는 자괴감으로부터. 지구 최후의 분단국가, 여전히 민족구성원 간에 총질을 해대면서 힘의 우위를 통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고 상대방을 증오하는 현실을 살아야 하는 이 안타까움의 시간들. 어릴 적 동화책에 나온 해님과 바람님의 싸움에서 결국은 해님이 이긴다는 동화적 진실을 이미 깨우쳤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정권 당시 그 모든 평화를 위한 노력들이 오늘의 사건을 초래한 것으로 몰아세우는 남세스러운 정치공세를 보면서, 정치적 무능함은 바로 보지 않으려 하면서도 그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리려는 위정자들을 보면서. 지나고 나서 보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 했는가를 확연히 알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시대가 지나고 다음 세대들은 또 다른 100년 후에 어떻게 우리의 시대를 기록할지 의문스럽다. 그때에도 우리는 이러고 있을까? # 마치며 필자의 이번 연재는 4년 만에 열었던 개인전 <경술국치 100년 기념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 지상전>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글과 함께한 그림들도 모두 전시회에 출품했던 작품사진을 위주로 실었다. 그리고 글 내용 역시 그에 맞추어 쓴 셈이었다. 사실 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경술국치에서 비롯된 100년의 역사에 대한 상상력에 기반한 예술적 접근으로 역사, 유적, 기억에 대해 사유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사유의 결론은 결국 공존과 공영을 위한 연대와 모색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시를 마치고 난 필자의 생각이 모두 작품 속에, 연재글 속에 담겼거나 드러난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연평도 사건이 터졌다. 온 나라의 뉴스 톱은 끝이 보이지 않는 극단적 남북대결의 논리를 전제로 하여 이 사건을 고리로 그동안 숨어 있던 군사적 응징에서부터, 과감한 군사비 지출 논의, 전쟁의 결과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이 내어지르는 전쟁불사론, 복수론에서 전략론까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당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금세 드러난다. 지금 이 상황도 결국은 훗날 평가받게 되어 있다. 100년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우리에게 무거운 의미로 남아 있다. 다만 좀 더 진지한 그리고 성찰적인 100년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0년 전의 각축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매우. 그동안 능력에 부치는 글을 인내로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끝>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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