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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사람 사이 숲의 풍경과 상처 이 책을 읽으면서 1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전라북도 정읍의 시골동네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싫었다. 아버지는 게을러서 코딱지 만한 논농사는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내 기억속에 아버지 모습이란 항상 술을 드시고 취한 모습으로 우리 5남매를 혼내시던 기억뿐이다. 해 질 무렵이면 어린 우리는 모두 초긴장 상태로 벌벌 떨며 지내야 했다. 그 시간에 아버지는 거하게 한잔 하시고 빼빼 마른 몸을 힘겹게 이끌면서 들어오시면서 우리를 닦달하실 것이 분명했다. 우리에게 아버지의 화를 대비할 준비책은 없었다. 술기운에 하시는 호통은 우리의 일상이었고 어머니는 온몸으로 그것을 막으셨다. 매일 밥상은 아버지의 발길질에 나가 떨어졌고 어머니의 몸은 성할 날이 없었다. 어머니는 우리 5남매만 아니면 진즉 나갔을 거라고 말하기도 하셨다. 우리 5남매는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잡고 있는 담보물이나 다름 없었다. 어린 마음에 우리는 아버지만 없다면 아주 행복하게 지낼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아버지는 50이 조금 넘은 어느 여름에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우리 형제들은 울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세상이 떠나가도록 우셨다. 얼마 전에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그때보다도 더 꺼이꺼이 우셨던 것 같다. 어머니의 울음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남겨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항상 '네 아버지는 술만 아니면 좋은 분이셨는데'라고 하신다. 아버지의 흠을 술의 탓으로 넘겨버리신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어머니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어머니는 잘하든 못하든 항상 참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자주 나에게 '너도 아이 낳고 살아봐. 그럼 부모심정 이해할 것이다.' 말씀하셨다. 4명의 자녀를 둔 지금 나는 과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느끼지만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은 우리를 위해 그토록 희생하셨다. 하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의 모습에 내가 희생만하다 인생을 보낸 부모로 보여지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나에게 하나의 사랑이고 희망이며 아이들에게 그렇게 기억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부모의 모습이다. ![]() 내게 인생이란 무엇인지, 가족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면서 정답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젊은 날의 숲은 어떤 나무로 채워졌으면 하는가? 이 책을 읽었다면 생각 좀 하며 살았으면 한다. <공인회계사 : @seomcpa, sbs@e-jejutax.co.kr>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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