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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규칼럼
[강문규칼럼]새해에는 희망의 별이 뜰까
입력 : 2011. 02.01. 00:00:00
며칠 전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기사를 읽으며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떠올랐다. '(전략)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후략)' 그렇다. 별은 단순히 우주를 떠 도는 행성 만은 아니다. 우리들 마음의 밭에 피어나는 꽃이요, 보석이다. 그런데 별을 볼 수 없다니 얼마나 삭막한 도시인가.

본란을 통해 '칠성대'를 세번째 다루고 있다. 이는 글솜씨가 변변치 않아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칠성대가 역사·문화유산으로서 제주에 보석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선인들이 여러 기록을 남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심재 김석익(1855~1956) 선생은 한말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50년대 중엽까지 살고 간 인물이다. 제주향토사 연구에 길잡이와 같은 '탐라기년', '증보탐라지'를 저술했거나 편찬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심재 선생이 1923년에 펴낸 '파한록'(破閑錄)을 보면 "칠성도는 제주 성내에 있다. 삼을라가 개국하여 1도, 2도, 3도로 자리잡을 때 북두칠성을 모방하여 쌓은 것이라고 전해 진다. 대(臺)의 터는 지금까지 질서정연하게 남아 있다"고 기록했다. 또 칠성동에 있는 별자리 중 하나는 "일본사람의 집 담장안에 들어있는데, 일본 사람이 평지로 만들어버렸다"고 했다. 이는 앞선 칼럼에서 소개한 기사, 칠성단 사진과 더불어 칠성대가 1920년대 중반까지 남아 있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향토사학자로 이름을 떨쳤던 만농 홍정표 선생이 주장했듯이 칠성대가 기원후 5세기~ 7세기 무렵 축조되었다면 거의 1500여년 전해내려 온 셈이다.

대전광역시는 2009년 한국천문연구원과 협약을 맺고 북두칠성을 '대전의 별'로 선포했다. 이어 북두칠성 형태로 별자리에 따라 각각 도시 이름을 붙여 대전을 독보적인 우주도시로 육성해 나가고 있다. 광주시도 관내 주요 자원을 7개의 북두칠성 형태로 연결하는 '북두칠성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경북 경주시와 영천시 등도 별을 도시의 상징적 자원으로 육성해 나가고 있다. 최근 한국 디자인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설립·개관한 근현대 디자인박물관은 '밤하늘에 빛나는 7개의 별-북두칠성'이라는 컨셉으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이들 도시에 제주의 칠성대처럼 북두칠성에 관한 뚜렷한 유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 도시는 북두칠성이라는 별이 현재와 미래의 자원화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꿰뚫고 이를 선점하기 위해 행정력을 쏟고 있다. 이러한 다른 시·도의 움직임과 제주의 현실을 보노라면 문득 제주목관아에 관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도 그랬다. 1992년 제주시가 탐라 천년의 사적지를 허물고 지하주차장으로 조성하겠다고 나섰을 때 본지는 1년 가까이 시당국과 맞서 이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정작 제주도 당국은 팔짱만 끼고 외면했다. 도문화재위원회와 학계에서도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결국 목관아지는 사적지로 지정·복원돼 제주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칠성대를 조명·복원하거나 자원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은, 행정당국은 물론 도문화재위원회나 학계에서 조차 글 한 줄, 말 한마디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제주목관아의 발굴과 복원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제주사회에는 제주의 가치를 외면하는 이들이 핵심요직을 차지하고 '명정고슴'으로 여기며 제 할 일을 저버리는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제 섣달 그믐이 지나면 새해에는 제주에도 희망의 별들이 다시 뜰까.

<논 설 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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