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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범의 제주생각
[고희범의 제주생각]우리 누님들의 꿈
동려학교에 올해 만학도 190여명 입학
어린 시절 꿈이던 배움의 즐거움 만끽
입력 : 2011. 02.24. 00:00:00
올해 61살인 윤경월씨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하루 두세 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해도 공부가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떨 때는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꼬박 밤을 새우는 날도 있다.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지 못한 탓에 그렇게 하고 싶던 공부를 뒤늦게 시작한 것이다.

윤씨의 아버지는 "여자가 문장 돼서 뭐하느냐"며 공부를 하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는 어린 딸이 공부하는 것을 보고 책을 찢어버리기도 했다. 결국 초등학교 2학년을 끝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언니 둘과 함께 아버지의 밭일과 어머니의 물질을 돕거나 동생 셋을 돌봐야 했다. 20살에 결혼을 하고 나서는 아들 딸 여섯을 기르느라 허리 펼 시간이 없었다. 남편과 함께 3000평 밭에서 농사지은 채소를 동문시장에 나가 팔았다.

평생 공부 못한 설움을 안고 살던 윤씨는 지난 2009년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자녀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동려평생학교에 입학했다. 초·중등과정을 마치고 지난해에는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딸과 사위들, 특히 주말마다 '보충수업'을 해준 중3 외손자의 도움이 컸다. 윤씨는 지난 달 고등과정에 입학해 대학 무용과나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할 꿈을 키우고 있다.

동려학교에는 올해 초등 3개반, 중등 2개반, 고등 1개반에 윤씨 같은 처지의 50~70대 학생 190여명이 입학했다. 95%가 여성인 것도 눈에 띈다. 여자라는 이유로 집에서 공부를 시키지 않았거나,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오빠나 남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이 들어서는 자녀들을 키우면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열심히 살다가 늦은 나이지만 못다 이룬 꿈을 펼치기 위해 이 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지난 1975년 설립된 동려평생학교는 개교 이래 모두 2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초등, 중등과정을 마친 뒤에는 이 학교에서 고등과정을 거쳐 검정고시를 치르거나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해 대학 진학을 준비하기도 한다. 이 학교는 제주도와 교육청의 보조금,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교사는 대학생, 정년퇴임 교사 등 36명으로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윤씨는 "동려학교가 없었다면 공부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대학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동려학교 선생님들에게 큰 절을 올릴 것"이라고 말한다.

동려(同旅), '같은 길을 가는 나그네'라는 뜻의 이 학교 강당 앞면 벽에는 '태양이 아니면 호롱불이라도 되자'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한글을 깨치는 것을 시작으로 대학 진학까지 꿈꾸는 이곳의 나이 든 학생들은 오늘도 부푼 꿈을 안고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후원이나 입학 문의 (064) 752-6381. <제주포럼C 공동대표·전 한겨레신문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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