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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지진사(地震史)에 가장 규모가 큰 9.0의 강진에 이어 높이 10m 규모의 엄청난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지역을 휩쓸었다. 지난 금요일 오후 인터넷에서 생중계로 보여주는 쓰나미의 위력은 가공할만 했다. 자동차와 집채들이 낙엽처럼 물위를 떠다니고, 도시는 곧 바다로 변했다. 사람들이 승용차로 탈출하는 행렬이 보였지만 헬기에서 촬영한 카메라 앵글에는 이미 거센 해일이 도로를 덮치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인줄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은 누구였을까. 그들도 여느 날처럼 직장에 출근,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시 커피를 마시며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던 평화로운 오후였을 것이다. 그런데 긴급 쓰나미 뉴스를 접하고 도시를 탈출하려 했지만 결국 허망하게 생을 하직했다. 이처럼 바로 10분 뒤에 밀려 올 참사를 모른채 쓸려간 사망자만 벌써 1만명을 헤아리고 있다. 살아남은 이들도 모든 것을 앗아가버린 삶의 터전을 보며 넋을 놓고 있다. 이처럼 '신선이 머무는 도시'라는 이름답게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던 미야자키현의 센다이(仙臺)시는 하루 사이에 초토화 됐다. 엄청난 재난의 현장을 지켜보다 문득 일본열도의 비극이 '강 건너 불'이 아님을 깨닿기 시작했다. 일본으로 유학간 조카딸이 도쿄에 머물고 있고, 몇달 전 제주대학의 모 교수도 센다이 소재 대학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했지만 불통이었다. 나중에 모두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일화도 떠올랐다. 1995년 고베 대지진 직후인 그해 여름 고베지역을 취재차 다녀왔다. 그 때 간사이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센다이에 살고 있는 초로의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고향인 제주를 다녀가는 길이라며 센다이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지역에는 제주출신 교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제주의 민간단체 등과 오래 전부터 자매결연을 통한 친선교류를 하고 있다고 들려주었다. 고향에서 높은 분들이 찾아오면 많지는 않지만 성금도 모아 보낸다고 했다. 헤어지며 기자에게도 취재 마치고 가는 길에 한번 들르고 가라며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 분들은 이번 지진과 쓰나미에 무사했을까? 제주특별자치도가 1979년에 처음 펴낸 '애향의 보람'에는 제주출신 재일동포들의 고향에 대한 성금·품 기증 실적이 기록돼 있다. 1960년대초부터 시작된 단성(丹誠)의 물결은 그야말로 '감동의 쓰나미'와 같았다. 어느 곳도 동포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마을이 없을 정도로 동포들은 감귤묘목을 보내고 전기·전화·도로·수도사업에서부터 마을회관, 학교체육관 건립 등 도민들이 필요한 곳에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전국소년체전 때는 운동장시설을 쾌척하거나 체전 경비를 지원하는가 하면 컨벤션센터 건립에도 절대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오늘의 제주발전에는 동포들의 뜨거운 애향심이 큰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의 품성과 도시의 품격(品格)은 위기 때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불행이 닥쳤을 때 외면하는 이웃과 친구는 진정한 동반자라고 할 수 없다. 일본의 대재난, 그리고 동포들의 불행 역시 소가 닭 쳐다 보듯 해서는 안된다. 그게 사람의 도리이며, 동포들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은 제주의 도덕적 의무다. 더구나 제주는 '평화의 섬'이라고 한다. 이는 제주섬 내부의 평화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 도시, 이웃 나라에 적극적인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을 때 그 이름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도정이 먼저 나서고 각 기관·단체도 뒤따라야 한다. 시민들의 자발적 기도와 성원은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하다. <논 설 실 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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