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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보존 활용방안 특집
[유적 보존과 활용 어떻게 할 것인가/국내외 유적 정비현장을 가다](8)오산리 유적
고산리 이전까지 우리나라 최고 신석기유적의 하나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입력 : 2011. 04.13. 00:00:00
쌍호 품은 오산리 유적

쌍호 품은 오산리 유적

▲강원도 양양에 있는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전경. 건물 앞쪽은 유적이 발견된 자연호수인 쌍호수다. 오산리 유적은 제주 고산리 유적이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꼽혔다. /사진=이윤형기자

유적 발굴·정비 기초지자체에서 주도적 역할
동해안지역의 대표적 문화명소 부상위해 고민

제주 고산리 유적이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신석기시대 유적중의 하나는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오산리 유적이었다. 오산리 유적은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연대를 나타내 각광을 받은 유적이다. 유적의 형성 시기는 약 8000년 전(B.P) 무렵에 해당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오산리 유적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시기보다 앞선 초기신석기에 해당하는 것이 고산리 유적이긴 하지만 오산리 유적의 학술적 가치와 중요성은 매우 크다. 지금은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 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동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명소로 키워나가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이 유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7년부터다. 동해안으로부터 200m 정도 떨어진 유적지 주변 자연 호수인 쌍호를 매립하는 과정에서 우연찮게 발견된 것이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목적으로 얕은 호수를 매립 농토로 만들기 위해 토사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토기와 석기가 출토됐다. 하마터면 영원히 호수바닥에 묻힐 뻔한 유적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이어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서울대박물관에 의해 6차에 걸쳐서 집중적인 발굴이 이뤄졌다.

▲쌍호 주변 야외에 복원된 움집.

발굴에 들어가자 오산리에서는 14기의 원형집자리를 비롯 화덕자리 등 유구와 덧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등 토기류가 다량 출토됐다. 또한 흙으로 빚은 얼굴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초기 신앙의 하나로 가치가 크며, 결합식 낚시바늘 등이 다량 출토된 것도 동아시아에서는 그 유례가 드물다.

이러한 오산리 유적은 북한의 서포항 유적과 남해안 지방의 신석기문화를 잇는 중간지대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포항 유적 역시 북한에서는 가장 오랜 시기의 신석기 유적으로서 비슷한 시기의 오산리 유적과의 문화적 유사성이 거론돼 왔다. 이처럼 오산리 유적은 진작부터 한반도 신석기문화를 이해하는데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왔다.

몇 년 간에 걸친 집중적인 발굴을 통해 중요유구와 유물이 확인되면서 오산리 유적은 1997년 국가사적(제394호)으로 지정된다. 이 무렵부터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한 사업추진이 시작돼 2005년 건물을 완공하고 2007년 개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산리 유적은 박물관 개관에 이어 단계적인 야외시설 정비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지방재정이 열악한 기초자치단체에서 문화재청과 강원도의 지원을 이끌어내면서 오산리 유적 정비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만 하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1998년)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고산리 유적은 이제야 발굴 정비를 위한 걸음마 단계에 있다.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지 10년을 훌쩍 넘긴 지금에야 고산리 유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오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각종 토기류(사진 위)와 결합식 낚시바늘 등 석기류(아래).

그동안 제주도 등 당국에서는 '찔끔식' 토지매입과 유적현장에 안내판을 세우는데 그쳤다. 학계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유적의 성격 규명을 위한 정식 발굴조사는 물론 보존 정비에도 관심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다른 지방의 사례를 교훈삼아 제주도와 제주시 등 당국에서는 고산리 유적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함께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 발굴에서 보존까지… ] 1977년 발견 후 2007년 박물관 개관

오산리 유적은 1977년 처음 발견된 후 집중적인 발굴과 이를 토대로 정비사업이 추진중이다.

발굴을 통해 중요유적임이 밝혀지면서 1997년 4월 13만6247㎡ 면적(지정구역: 1만6051㎡, 보호구역: 12만196㎡)이 국가사적 제394호로 지정됐다. 이어 1998년에 기본정비계획 수립에 들어가 1999년 오산리 선사유적조성사업이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음에 따라 본격적인 정비사업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이에따라 2001년부터 2005년 9월까지 총 9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 가운데 박물관 건축공사와 전시관을 완료하고 2007년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을 개관했다. 이어 11억8000만원을 투입(국비 70%)한 가운데 오산리 선사유적 야외 시설공사를 실시했으며, 단계적인 조성사업이 예정돼 있다.

오산리 유적은 6년 간에 걸친 집중적인 발굴과 이를 토대로 8년 간 기본정비계획 수립과 박물관, 전시관 건립이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면서 유적 보호와 체험현장으로서의 교육 및 활용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유적 발굴현장에 오산리 유적에서 확인된 집터 등을 복원하고, 쌍호 주변에 탐방로를 조성하는 한편 박물관과 야외시설을 건립함으로써 유적과의 연계성을 높이는 등 현장성을 살리고 있다.

또한 주변의 오산해수욕장 등 관광지와 연계하여 동해안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정비 및 활용계획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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