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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찬 맛집을 찾아서](6)보목포구 '돌하르방 식당'
아삭·매콤 자리물회 한그릇에 바다내음 가득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입력 : 2011. 04.16. 00:00:00

▲한동실(오른쪽)·정미숙씨 부부. /사진=강희만기자

신선한 자리돔에 된장 양념 등 전통 맛 지켜
고향으로 돌아온 인심 좋은 부부 손맛 넘쳐

어린시절 붉은 고무 대야에 자리돔을 담아 머리에 이고 "자리삽서"를 외치는 아주머니들이 '뜨면' 동네아낙들은 삼삼오오 그 대야 근처로 모여들었다. 제주사람들은 '더위에 자리물회 한 그릇이면 보약이 따로 없다'고 한다. 여름이 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봄볕이 뜨겁다고 느껴진다면 자리물회 한그릇으로 바다내음을 머금어보는 것은 어떨까.

해마다 자리돔축제를 여는 서귀포시 보목마을은 자리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만큼 최고의 자리돔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맛집이 적지않다.

그 중에서 된장맛을 잘 살린 전통 '자리물회' 맛을 지켜오는 곳이 섶섬이 한눈에 마주보이는 포구에 있다.

서귀포시내에서 횟집을 운영하던 이 마을 출신 한동실(51)·정미숙(49)부부가 7년전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마을 자리물회 맛을 잇고 있는 돌하르방식당이 그곳이다.

▲자리돔으로 만든 요리들.

지난 14일 점심시간으로는 조금 이른 시간에 맛집을 찾았는데 제법 올레6코스를 찾은 이들이 찾아와 앉아 있다. 인심좋은 부부는 물회를 시키면 자리돔이나 고등어구이, 혹은 조림을 꼭 함께 내놓곤 했다.

이들 부부가 한상 차려놓은 자리돔 요리는 그야말로 황제의 상차림이 부럽지 않다.

그중 대표적 요리인 '자리물회'는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여름철 별미다. 자리의 비늘을 긁어내고 지느러미와 내장을 제거한 후 머리쪽은 곱게 다지고 몸쪽은 등쪽으로 길게 어슷썰기하면 가슴의 작은 뼈가 잘게 잘라진다. 썰어놓은 자리에 식초를 약간 뿌려두고 오이는 채썰고 잔파·깻잎·미나리·부추·고추 등의 야채는 잘게 썬다. 그리고 나서 된장, 마늘, 생강, 고춧가루, 깨소금 등 갖은 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버무린 후 양념된 물을 부으면 향긋하면서도 구수한 자리물회가 완성된다.

▲자리물회 요리 순서.

자리물회를 만들어내는 부부의 칼질와 무침솜씨는 예술의 경지다. 자리회무침을 위한 자리돔은 물회 용보다 조금 크게 썰어낸다. 여기에 부추, 오이, 양파, 깻잎, 배를 썰어 새콤달콤한 회무침이 탄생한다.

상에 내놓은 밑반찬도 정갈하기 이를데 없다. 톳무침, 미나리, 풋고추, 자리젓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자리물회에 향긋한 '재피'를 넉넉히 넣고 식초를 적당히 넣어 한숟가락 떠먹으니 첫맛이 구수하다. 구수한 맛과 새콤한 맛의 어울림이 환상이다. 여기에 탱탱한 살의 촉감이 전해지는 쫄깃한 자리돔의 식감은 매일아침 보목포구로 들어오는 배에서 자리돔을 공수해오는 부부의 정성이 느껴진다. 보목자리돔의 특성인 뼈가 연한 자리돔에 손맛이 보태졌다고 할까.

▲양푼 가득 바다내음을 머금은 자리물회.

강회는 깻잎을 깔고 가늘게 썰어낸 무채를 깔고 그 위에 현란한 칼질로 빚어낸 조각같은 자리돔이 올려진다. 큼직한 것은 구이용으로 따로 놓아둔다. 석쇠에 보기좋게 눕히고 굵은 천일염을 '착착'뿌려 오븐에 올리는 자리돔 자체에서 나오는 노란빛 기름이 지글지글 올라오는 것이 한눈에도 보인다.

한씨의 자리돔에 대한 추억은 고동소리로 시작된다. "어린 시절 배를 타셨던 아버지가 자리를 많이 '뜨면(잡으면)' '부웅'하는 고동소리와 함께 배가 들어왔어요. 그러면 포구로 신나게 달려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운반선이 생겨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됐죠."

그가 어렸을땐 봄부터 여름까지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자리돔이었지만 지금은 운반선 덕분에 사시사철 신선하게 먹을 수 있어 좋기는 하다. 그래도 그 고동소리의 추억은 되살릴 수 없어 아쉽단다.

▲사진 왼쪽부터 자리구이, 자리회무침

최근에는 된장을 풀어넣은 자리물회에 익숙하지 않은 관광객들을 위해 고추장을 풀어넣는 곳도 많지만 한씨는 어린시절 된장으로 맛을 내고 '재피'잎을 뿌려 먹었던 그맛을 지켜가고 있다. 그래서 관광객보다는 옛 자리물회를 그리워하는 손님들이 더 많이 찾는다. 양푼에 푸짐하게 내놓는 물회는 8000원. 굵은 자리돔을 구워 내놓는 자리구이(1만5000원)와 회를 썰어 막장과 함께 내놓는 자리강회(2만원)도 있다.

보목 출신 한기팔 시인은 '보목리 사람들'을 통해 이렇게 노래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번 사는 맛나게 사는 거 보려거든 이 나라의 남끝동 보목리에 와서 보면 그걸 안다.'고. 딱 맞는 말이다. 보목포구를 찾아 자리물회 한술 뜨지 않고서는 맛나게 사는 참뜻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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