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고희범의 제주생각
[고희범의 제주생각]딸 고교입학이 무서운 엄마
기초수급가구 보다 못한 차상위계층
'보편주의 방식 복지' 행복한 삶 기대
입력 : 2011. 05.05. 00:00:00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 사는 김숙자(46·가명)씨는 남편(47)과 함께 한 자활센터에서 일한다.

김씨 부부의 출근시간은 아침 9시지만 김씨는 야간근무가 많아 보통 밤 10시가 돼서야 집에 들어간다. 남편은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어 아이들은 밤 9시쯤에야 저녁식사를 한다. 이렇게 해서 부부가 버는 돈은 한달에 160만원. 이 수입으로 중학교 3학년인 딸,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 함께 네 식구가 빠듯하게 산다. 김씨의 집은 보증금 100만원에 연세 200만원인 18평에 방 3개짜리 다가구주택이다.

한달 생활비는 식비, 전기·수도료, 연료비, 교통비, 남편이 일 때문에 타고 다녀야 하는 92년식 티코 기름값 등으로 120만원이 나간다. 여기에 "혹시 큰 일 당할 때를 대비해" 가장 보험료가 싼 상품으로 가입한 암보험, 상해보험, 의료실비보험, 자동차보험으로 20만원, 딸의 급식비, 보충수업비, 참고서 값으로 10만5000원, 아들의 방과후 학교 수업료와 교재비 10만원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무엇보다 딸이 내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학비가 가장 큰 걱정이다. 수업료와 급식비, 교재비 등으로 최소한 분기에 100만원이 들게 돼 연간 400만원이 필요하다. 김씨는 장래희망이 작가인 딸과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 하는 아들이 고등학교만이라도 제대로 다닐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하지만 한 학기분 수업료조차 나올 구멍이 없어 "그 생각만 하면 공포스럽다"고 했다.

김씨 가족은 가구당 소득이 4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 144만원 보다 20% 많은 '차상위계층'에 해당한다. 이들은 실질적으로는 '기초생활수급가구' 보다 오히려 생활이 더 어렵다. 기초생활수급가구의 경우 의료비, 중고생 자녀의 입학금과 수업료, 초등학생의 방과후 학교 교육비가 면제되고, 중고교 신입생 교복값(30만원), 연간 학용품(4만8000원), 교과서(11만5000원), 교통비(34만6000원) 등을 지원받는다. 하지만 차상위계층은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김씨 가족과 같은 처지의 차상위계층은 몇 명인지 통계조차 잡히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부자감세정책, 40조를 쏟아 붓는 4대강 사업 등으로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사실은 많은 국민이 심각한 생존위협에 직면해 있는 '불안사회'임을 말해준다.

모든 국민이 무한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시장만능주의국가에서는 상위 20%를 제외한 80%의 대다수 국민은 행복한 삶을 기대할 수 없음이 입증됐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보편주의 방식의 복지제도에 있다. '보편주의 복지국가', 이것이 오늘의 시대정신이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다.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