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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규칼럼
[강문규칼럼]제주섬에 새롭게 뜨는 별문화
입력 : 2011. 05.31. 00:00:00
제주섬에는 매우 다양하고 소중한 별문화가 전해진다. 장수를 뜻하는 노인성도 그 중의 하나다. 수성(壽星), 혹은 노성, 남성(南星) 불러왔는데 서양에서는 '카노푸스(CanoPus)'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제주도 남쪽 수평선 근처에서, 중국은 남악에서만 보인다고 전한다. 이 별은 춘분과 추분 때 볼 수 있어 그 때마다 한라산 정상 부근이나 서귀진(西歸鎭)에서 이 별을 보려고 사람들이 찾아갔다고 한다. 영주십이경의 하나인 '서진노성(西鎭老星)'이나 삼매봉 근처에 세워진 남성대, 서귀포에서 오르는 남성대 등반코스도 여기에서 유래하고 있다.

영실 코스를 따라 한라산 정상으로 다가가면 '선작지왓'에 이르게 된다. 아고산대식물이 자생하는 곳인데 노루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주위를 살펴보면 너비가 10m남짓한 커다란 돌무더기들이 7~10개 정도 눈에 들어온다. 1609년 제주판관으로 부임했던 김치의 한라산등반기를 보면 "수행동을 지나서 10여리를 가자 칠성대에 닿았다. 칠성대로부터 5리를 가자(중략) 곧 상봉(上峰)이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고지도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남아 있다. 제주 성안의 칠성대처럼 한라산 정상 부근에도 탐라인들이 칠성대를 쌓은 것일까. 이에 대해 현원학 박사(지질학)는 몇몇 학자들의 견해를 빌어 칠성대가 인공적으로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제주의 별문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조실록을 보면 정조임금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간 제주유생들과의 문답 내용이 나타난다. 임금은 한라산이라는 이름이 은한(은하수)를 끌어당길 만큼 높은 산이라는 점을 떠올리며 "그런데 그 은하수를 타고 한라산을 오르내린 신선과 백록은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18세기 후반까지 신선과 백록의 존재는 허구가 아닌, 은하수를 타고 한라산에 오르내렸던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에 얽힌 별 이야기도 전해내려 온다. 원제국이 제주에 대규모 말목장을 세우려고 했을 때 제주에 말의 수호신이자 조상신인 방성(房星), 즉 천추성이 비추는 곳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이 때문에 다른 지방에 없는 마조단(馬祖壇)을 세워 제를 지내왔는데 1909년 폐지되었다. 그 터인 KAL호텔 울타리에는 마조단 표석이 세워져 있다. 1900년에는 방성칠이라는 자가 자신이 방씨 성을 가졌기 때문에 제주섬을 다스려야 한다며 주민들을 현혹, '방성칠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제주의 무속에는 뱀을 모시는 칠성본풀이, 칠성눌 등이 있다. 고(故) 홍정표선생은 집 뒤뜰에 모시는 칠성눌은 원래 칠성대의 또 다른 이름인 칠성단에서 유래했다는 해석을 담은 글을 남기고 있다. 이 부분은 관련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할 일이지만, 뱀신앙에 왜 칠성이라는 별이름을 붙이게 되었는지 흥미롭다. 장독대 앞에서 여인들이 정화수를 떠놓고 소원을 빌었던 것처럼 민간에는 칠성신앙이 넓게 퍼져 있었다. 사자(死者)를 묻을 때 덮는 관두껑을 칠성판이라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모두 하늘의 북두칠성으로 올라간다는 믿음에서 관두껑에 북두칠성 모양의 표시를 했기 때문에 비롯된 말이다. 사지를 일곱마디로 묶는 것도 같은 행위다. 북두칠성으로 보내기 위한 일종의 화물표인 셈이다.

제주시는 탐라시대 성내에 북두칠성 형태로 세워진 뒤 일제강점기에 훼철된 칠성대가 위치해 있었던 곳에 표석을 세우려 하고 있다. 노봉 김정목사가 "월대와 칠성대를 수축하니 성안에 달과 별이 다시 뜨네"라는 시처럼 제주에도 별문화가 다시 뜨고 있다. 그러면 윤동주 시인처럼 '별 헤이는 밤'도 더 많아 질 것이다. 이를 어찌 반기지 않을 것인가.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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