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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배움터를 가다
[옛 배움터를 가다/폐교의 어제와 오늘](4)무릉동초등학교(1965~1994)
대정 '서6개리' 일대 폐교의 신호… 마을 가꾸기로 희망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1. 05.31. 00:00:00

▲지역주민들의 교육열로 생겨난 무릉동초는 1994년 무릉초로 통폐합됐다. 무릉초·중학교에서 제공한 무릉동초 1회 졸업 기념사진 /사진=진선희기자

중앙소학교· 무릉북초· 신성분교장 등 거쳐 본교 승격
폐교 시설 주축 자연생태 숨쉬는 '무릉도원마을' 알려

1993년 6월. 무릉초 무릉동분교장의 학부모들은 학교 교무실에서 임시총회를 열었다. 무릉동분교장의 존속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농사일로 바쁜 시기였지만 과반수 이상의 학부모가 참석했다.

1994년 무릉동분교장에 입학 예정인 학생은 3명. 다른 학교로 전학하는 아이들이 하나둘 늘고 있는 현실에서 학부모들은 '시대적인 흐름과 아동들의 원활한 교육 환경을 마련'하는데 뜻을 같이하고 분교장 폐지를 결정했다. 열흘 뒤에는 마을 개발위원 회의가 열려 학부모 총회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1994년 무릉동분교장은 그렇게 문을 닫았다.

▲숙박시설을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옛 무릉동초

▶청년회가 사들인 운동장 부지 쾌척 ='무릉동국민학교'라는 이름이 제주교육사에 등장하는 해는 1965년. 무릉동초는 그보다 앞선 교육기관의 뜻을 이으며 그해 본교로 태어났다. 1940년쯤 지역유지들이 뜻을 모아 무릉2리에 세운 중앙서당을 시작으로 중앙소학교, 무릉북국민학교, 신성분교장으로 명멸을 거듭한 끝에 본교인 무릉동초로 승격한다.

1987년 발간된 '무릉동국민학교 향토지'는 1953년 4월 무릉초 신성분교장 설립 인가가 이루어졌다고 기록했다. 지금의 무릉2리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에 있던 신성분교장은 학생수가 늘어나면서 무릉동초로 교명을 바꾸고 승격 인가를 받았다. 신성분교장 명칭은 마을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릉2리에서 보관중인 자료를 보면 단기4286년(1953년) 김모씨를 신성리장에 임명한 후 4288년에는 동일인을 무릉2리장에서 의원 면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무릉동초 부지 조성 경위를 새겨넣은 무릉동초의 빗돌

무릉동초에 세워진 빗돌에는 무릉동초 학교 부지 조성 과정이 새겨져있다. 그에 따르면 마을 청년회가 1940년대초 회원과 독지가의 도움으로 300원의 기금을 조성해 3000여평의 부지를 '청소년이 마음놓고 뛰노는'공간이자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체력단련용'운동장으로 사들였다. 그러다 새로운 학교 부지가 필요하다는 마을의 뜻을 따라 운동장을 흔쾌히 내놓았다.

▶"평화로 영향 대정 서부 지역 침체"=1978년 39명의 졸업생이 주산 1급에서 6급까지 유급증을 따내며 화제를 뿌렸고 그것이 학교의 전통이 되었다는 무릉동초. 산수과, 학급문고 운영 과제시범학교였고 학교경영우수학교로 지정되기도 했던 무릉동초는 1993년 무릉초 무릉동분교장으로 축소된 지 1년만에 무릉초로 통폐합됐다.

무릉동초의 폐교는 대정읍 서6개리 일대 학교의 '쇠락'을 알린 신호가 되었다. 신도 1~3리, 무릉 1~2리, 영락리 등 6개 마을에 흩어져있던 영락초· 신도초가 차례로 문을 닫았다. 이들 학교는 서6개리의 중심지 격인 무릉리의 무릉초로 묶였지만 1999년 무릉초·중 통합운영학교가 되었고, 근래엔 그마저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다시 통폐합 위기를 맞고 있다.

▲통합운영학교로 탄생한 무릉초·중학교 전경

이 무렵은 공교롭게도 평화로가 거듭 확장되던 시기다. 이 지역에서 만난 주민들중에는 "평화로의 도로 사정이 좋아지면서 서6개리와 한경 일대는 오지가 되어버렸다. 마을을 지나는 차량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도로 사정의 변화로 도시와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정주 여건이 열악해졌다는 말이다.

이런 현실에서 무릉2리의 바지런한 움직임이 눈에 띈다. 학교가 사라진 아쉬움을 가슴에 묻은 채 '무릉도원마을'로 이름을 알려가고 있다. 전국 최고과일 품평회에서 2년 연속 최우수를 차지한 감귤 탑푸르트 단지가 있는 무릉2리의 농산물을 도시 사람들에게 보내는 무릉외갓집,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는 무릉 녹색체험, 제주올레 체험, 난장 축제 등 다양하다. 그 중심에 무릉동초가 있다. 매년 11월 열리는 마을축제인 '난장' 등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무릉2리의 가치를 알리는 곳이 바로 제주자연생태문화체험골이 자리잡은 옛 학교다.

▲신성분교장이 들어섰던 무릉2리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



무릉동초 1회 고영필 이장 "폐교 아쉬움 속 변화중…젊은층 귀향 늘고 있어"

"젊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는 것은 소득이 낮기 때문이라고 본다. 먹고 살기 위해서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는 것이다."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2리 고영필 이장(57·사진). 무릉동초 1회 졸업생이자 무릉동분교장의 마지막 학부모 회장이었던 그는 폐교의 원인중 하나를 농업정책의 부재에서 찾았다.

그는 "무릉동분교의 학생수가 줄어들고 수업 환경이 열악해지는 것을 마냥 두고만 볼 수 없어 학부모들이 결국 본교인 무릉초 귀속을 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학교가 문을 닫은 후 침체기를 겪은 듯 했지만 최근 몇년새 마을에 긍정적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 2월에 9명, 3월에 11명, 4월에 9명이 이사를 왔다. 3개월 사이에 30명 가깝게 무릉2리 인구가 늘어난 셈이다. 마을청년회 회원이 40명쯤 되는데 젊은층이 늘어나면서 의욕적으로 활동을 한다."

고 이장은 이즈음 몇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무릉2리를 찾는 방문객들을 위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숙박시설을 준비하고 있다. 폐교된 무릉동초에 숙박시설을 새롭게 짓고 있고, 무릉2리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 한켠에 마련된 술빚기 체험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할 예정이다. 지역 주민들이 십시일반해 사들인 마을회관 인근 부지에는 제주방언 교실 체험장을 만들기로 했다. 걷기에 지친 탐방객들을 위한 족욕시설도 들어선다.

"무릉초병설유치원생이 12명인데 그중 8명이 무릉2리 아이들이다. 주변 마을중에서 아이들이 많은 곳이 무릉2리다. 그것만으로도 마을의 희망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돌담 쌓고 도마뱀 잡을까
생태문화체험골 변신 이용객 꾸준


비파나무 열매가 익어가는 무릉동초는 한창 공사중이었다. 오래된 숙박시설을 산뜻하게 단장하기 위해서다. 대정읍 소득가꾸기 사업에 무릉2리가 선정돼 20억원 가량의 예산을 지원받았고 이중 일부를 숙박시설, 체험장 리모델링 사업에 쓰고 있다. 이달부터 공사가 시작돼 오는 10월쯤이면 마무리될 예정이다.

무릉동초는 일찍이 '제주자연 생태문화체험골'로 변신했다. 1일 체험에서 3박4일 현장학습까지 학교 안팎에서 진행된다.

▲제주자연생태문화체험골에 재현된 선사시대 움집.

강영식 생태문화체험골 촌장이 폐교된 이후 수년간 주인을 잃은 채 놓여있던 무릉동초에 발을 디딘 것은 1999년. 제주를 떠나 20년간 서울에서 지냈다는 강 촌장은 "고향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생태문화교육에 뛰어들었다. 적당한 교육장을 찾기 위해 당시 20여곳이던 도내 폐교 곳곳을 둘러봤다.

무릉동초는 다른 지역 참가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국토 최남단' 마라도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맞춤한 곳이라 여겼다. 그는 2000년 1월 생태문화체험골을 개원하고 도외 지역 청소년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어가며 제주 중산간에 잠들어있던 폐교를 일깨웠다.

"당시만 해도 폐교를 활용한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다. 생태문화체험이란 말도 생소했던 시기다. 최근 청소년들의 현장 학습이 활성화되면서 1년에 1만명에서 4000명까지 이용하고 있다."

강 촌장이 생태문화체험골에서 펼쳐놓는 프로그램은 60여가지. 돌담쌓기, 집줄놓기, 고구마· 감자 구워먹기, 숲체험, 선사체험, 농사체험, 도마뱀 관찰, 황토로 염색하기, 도리깨 타작, 민물고기 탐사, 습지 탐사, '고망' 낚시, 겨울철새 탐조 등 계절별, 일정별 체험 프로그램이 다채롭다. 최근에는 '제주올레코스'가 경유하면서 무릉동초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더 늘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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