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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규칼럼
[강문규칼럼]영혼이 깃든 도시를 찾아서
입력 : 2011. 06.07. 00:00:00
마음이 한가로울 때면 원도심의 거리를 거닌다. 지난 일요일에도 이 골목, 저 골목을 거닐었다. 요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은 뒤로 도시는 또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보르헤스, 마르케스와 함께 현대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이탈로 칼비노가 1972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정원에 앉은 나이든 쿠빌라이 칸에게 젊은 마르코 폴로가 자신이 여행했던 도시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짜여진 이야기다. 이 소설은 도시와 기억, 욕망, 죽음, 기호, 눈에 관한 이야기가 몽환적(夢幻的)인 분위기로 묘사되고, 그 이야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공간들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에 관한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하나씩 보여준다.

제주대병원이 미련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제주시 삼도2동 지역은 지난 1~2년새 부쩍 쇠락해 지고 있다. 거리는 문 닫은 상가들로 썰렁하고 사람들의 걸음도 뜸하다. 그곳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올해 93세라고 하는데 지팡이도 짚지 않고 산책을 할 만큼 정정했다. 그 분과 팽나무 그늘에 앉아 살아 온 생애와 동네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분은 20세 초반부터 72세까지 운전하며 후손 80여명을 거느리게 된 이야기부터 자랑스럽게 들려주었다.

놀라운 것은 직접 현장을 걸으며 들려준 옛 사람들의 삶의 터전과 도시 골목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분은 삼도2동 사무소에서 불과 100~200m 사이에 있는 거리에 살았던 인물들의 집터를 하나씩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되었거나 생존해 있는 저명인사들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최초의 교육감이었던 최정숙여사가 평생을 살았던 신성여중 사택과 그녀의 선친인 최판사, 최 교육감과 더불어 근대 제주여성의 선각자인 고수선 여사를 비롯하여 양치종 전교육감, 남양문화방송(제주mbc)을 설립한 박태훈 사장, 문종철 전 제주대학장, 김동익 전 교육위원, 김태진 전 변호사, 강태식 전 제주시장 등과 같은 이름들이 계속 이어졌다. 관련 자료를 갖고 이들 인물들을 검색한다면 한 권의 책으로 펴내도 족히 될 만한 가치와 풍성(豊盛)함을 갖고 있다.

"다음에 뵐 기회를 주십사" 부탁하고 다시 거리를 걸었다. '불망골(불막은골)'을 이리저리 배회하다 구제주대병원 동쪽 골목으로 이어진 작은 길로 접어든다. 그곳에는 칼럼자가 30년 전 책을 만들기 위해 여름날 낡은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교정을 보았던 동흠인쇄소 터가 있다. 사장님의 다정한 마음씨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그게 엊그제 같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오래된 초가집이 있다. 이 골목을 지날 때마다 담장너머로 기웃거렸는데 마침 주인이 문을 열고 아들 내외와 손주들을 맞고 있었다. 그 집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데 주인은 집안의 낮은 언덕을 가리키며 옛날에는 그곳에 앉으면 건입포구로 들락날락하는 모든 배들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잘 다듬어진 돌계단으로 오르내렸던 이 공간은 하나의 정자였던 셈이다. 때때로 주인은 이곳에 지인들을 불러 주연을 베풀며 음풍농월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이 집에서 7대를 이어가고 있다고 하니 200년은 훨씬 넘는 세월이다. 이들의 가족사도 궁금해진다.

사람에게 삶은 욕망으로 점철된 시간들이다. 그 속에는 한 세상을 살아가며 펼치고자 했던 꿈의 성취나 좌절 등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그래서 거리와 골목, 그 안에 자리잡았던 집과 그 주인들의 이야기는 도시의 가장 소중한 이면사(裏面史)이기도 하다. 이처럼 켜켜이 쌓인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깊은 영혼의 울림이 깃든 거리-가 제주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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