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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범의 제주생각
[고희범의 제주생각]"우리가 속았어!"
개발바람 불 때 초가 팔려 사라진 자리
부동산 투기꾼 몰려 별장건물로 채워져
입력 : 2011. 06.16. 00:00:00
제주시 애월읍 동쪽 바닷가의 한담마을. 동풍이 불면 유독 파도가 잔잔하고 물이 맑아 '한담'(漢潭)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물이 맑아 바닷속 바위와 모래가 훤히 들여다보이고, 두어 가족이 물놀이를 즐길 만한 완만한 백사장도 있다. 바다를 향해 들어앉은 아담한 마을은 고즈넉하기 그지없다.

스물다섯 집이 오순도순 살던 이 마을은 이제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외지인들이 이 마을 집들을 사들이면서 별장지대가 된 뒤 정작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없어 평소에는 사람의 그림자를 찾기 어렵다.

이곳 한담리에서 나고 자란 김권익(73)씨는 22년 전 "제주시의 돈 많은 사람이 집을 팔라고 여러 차례 부탁해" 평생을 살아온 집을 팔고 인근 애월리로 이사했다. 집은 옮겼지만 지금도 고향 앞바다가 생활 터전이다. 6월 들어서는 주낙으로 우럭을 잡는다.

조그만 어촌 한담마을이 외지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제주도에 개발바람이 한창일 때였다. 탤런트 노주현이 처음으로 마을의 집 한 채를 사들여 별장으로 꾸몄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 집, 두 집 팔리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95살 강 아무개씨 집만 남고 모든 집이 팔려나갔다.

▲초가들은 사라지고 번듯한 별장 건물들로 채워진 한담마을.

마을의 옛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마을 공동창고로 쓰이던 초가 한 채와 장정들이 힘겨루기하던 등돌, 그리고 고향을 그리는 이들이 세운 망향비 뿐이다. 이 초가는 멸치떼가 들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멜을 후리고' 공동으로 멸치젓을 담가두던 곳이다. 동네 청년들 중 아무도 무릎 위로는 들지 못한 지름 60cm 정도 크기의 등돌은 지금은 세상을 떠난 김형택씨가 한팔로 겨드랑이에 끼고 뭍으로 들어내 온 것이다. 고향을 떠나 20여년 세월이 지났어도 고향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난 1998년에 세운 망향비에는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고향바다의 파도소리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을 잃은 슬픔이 짙게 배여 있다.

땅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요, 공동체의 근간을 이룬다. 결국 땅의 소유 문제가 인간 삶의 기초와 마을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한다. 한담마을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일까? 오래전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일을 통해 제주도 개발의 내용과 방향을 곱씹어 볼 여지는 없을까?

김권익씨는 별장 건물을 바라보며 원망을 토해낸다. "우리가 속았어! 부동산 투기였어. 별장 지어놓고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다가 이리 팔고 저리 팔고, 주인이 누군지도 몰라. 사람이 안사니 마을만 죽어버렸지."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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