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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규칼럼
[강문규칼럼]'트리플 크라운'은 훈장이 아니다
입력 : 2011. 07.05. 00:00:00
"신당(神堂)의 거대한 나무들은 오방색 리본을 단 채 거인의 팔처럼 낮은 가지를 벌리고 있다. 나무 위 리본은 태양빛에 바랬고 거미줄이 쳐져 있다.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현대 세계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자연과의 접촉을 되찾으려는 열망을, 모든 추상을 배격한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숭배의 가능성을 여기서 발견한다." 200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가 '제주 찬가'에서 언급한 대목이다.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제주가 보유하고 있는 유네스코의 '트리플 크라운'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늘도 짙은 법이다. 과연 제주섬에 세계적인 자연경관이나 자원에 걸맞는 인간의 삶과 문화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회의적 생각이 때때로 솟아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제주선인들이 이 땅에 새긴 자취와 기억들은 100여년 사이에 대부분 지워졌다. 일제강점기에는 대표적인 관아시설이 파괴됐고, 광복 이후에는 4·3사건에 이은 무분별한 도시개발과 새마을운동이 펼쳐지며 마을이 간직하고 있던 원풍경마저 변형되거나 사라졌다.

1960년대 이후 제주적인 것은 낙후와 침체, 빈곤과 무지의 유산으로 인식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하루속히 없애고 육지부다운 도시를 만드느냐가 개발행정이 추구해야 할 중심 가치와 목표였다. 그래서 난개발이나 편법적인 공사가 이루어져도 필요악이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보호 받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주의 서사적(敍事的) 문화풍경은 사라졌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수십년간 행정당국이 제주섬에서 이루고자 했던 일관된 정책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르 클레지오' 같은 이들은 단 한번도 당국이 이룩한 도시의 빛나는 성과(?)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성산포에서 '까닭 모를 우수'를 느끼고, 마을입구에 서있는 돌하르방과 동자석, 그리고 돌담·산담을 보며 제주인들이 일군 문화풍경에 경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현대 세계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오방색 리본을 단 신당에서 '새로운 세대가 자연과의 접촉을 되찾으려는 열망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드림 소사이어티'의 저자이자 미래학자인 '롤프 옌셴'이 한국사회를 위해 던진 조언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세계의 흐름은 정보화 사회를 벗어나 감성이 지배하는 '꿈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일깨웠다. 그래서 한국사회가 '다이나믹 코리아'가 아닌 '모닝캄 코리아'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족보와 같은 우리들의 뿌리나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겨 버렸던, 오래된 것들을 간직한 헛간에서 감성적 스토리와 자원들을 찾아 세계인들에게 내놓을 것을 권유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제주에는 그런 보배들이 너무 많다. 종종 제주선인들은 천부적인 스토리텔러이거나 빼어난 예술적 감각을 가진 디자이너였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런 사실은 숱한 신화와 전설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지고 있다. 탐라의 왕성(王城)이라 할 수 있는 제주성안에 북두칠성의 형태로 쌓은 칠성대를 비롯한 다채로운 별문화, 돌담과 초가 등등 그런 사례는 너무 많다. 이처럼 제주섬의 풍토 속에 널려 있는 자원을 인간의 삶 속으로 끌어들여 만들어 놓은 건축물과 공간, 민속유산에 세계의 지성들은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적 풍경이 제주인들의 삶과 문화에 베어날 때 제주도시는 비로소 세계적 자연유산을 거느린 주인으로서의 품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유네스코의 '트리플 크라운'은 훈장처럼 벽장에 걸어두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제주에 어떤 의미이며, 그것을 위해 제주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일깨우는 죽비로 삼을 때 진정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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