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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개발20년, 그 현장에 서다
[제주개발 20년, 그 현장에 서다](12)곶자왈 채석장, 그 이후
'트리플 크라운'이 부끄런 곶자왈 채석장 허가 금해야
입력 : 2011. 10.05. 00:00:00

▲거대한 채석장. 뒤편에 녹지로 보이는 지역은 채석을 끝낸 후의 모습이다. /사진=참여환경연대 제공

채석후 식생 복원 규정 불구 고의 부도로 책임 회피
지하수에 악영향 미치는 쓰레기 매립장 둔갑하기도

가을이 성큼 가까워졌다. 한라산 만인보 여섯 번째 기행은 먼저 함덕 서우봉으로 향했다. 북촌은 선흘 곶자왈 아래 자락으로 채석장들이 밀집해 있어서 곶자왈 파괴가 심각한 곳이다. 곶자왈을 파먹고 있는 채석장들을 굽어보기 위해 서우봉으로 향한 것이다.

서우봉에서 바라보는 함덕해변은 너무 아름다웠다. 가을이 되면 하늘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물도 깊어지는 것 같다. 함덕해변의 쪽빛 바다가 깊이를 알 수 없이 푸르다.

서우봉 정상에 이르자 북촌지역부터 선흘까지 선흘곶이 끝없이 이어졌다. 선흘곶자왈의 상록난대림은 가히 세계최대라 할 만하다. 과거 선흘곶자왈을 관통하는 길이 생기면서 '태왕사신기' 세트장과 세인트포골프장이 선흘곶자왈에 뛰어들기 전만하더라도 단일 곶자왈이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던 곳이다.

▶서우봉에서 보이는 채석장들

서우봉은 해변에 있는 오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있는 채석장들을 선명하게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북촌 지역의 채석장 주변에는 오름이 없어 내려다보기가 어렵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오름이 서우봉이다.

서우봉에서 내려다보면 곶자왈지대의 나무에 가려 채석장 자체는 보이지 않지만 돌을 파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먼지가 마치 연기처럼 피어 오르고 있다. 위성사진을 보기 전에는 북촌지역 채석장의 심각성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래서 좀처럼 이 곳 채석장의 문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만인보 기행에서 발견한 폐기물 매립 장면. 천장용으로 썼던 석면이 매립되는 것으로 보인다. 곶자왈 지역의 채석장중에는 이처럼 채석이 끝난 후 건축폐기물 매립장으로 둔갑하는 일이 있다.

▶거대한 규모의 채석장에 놀라다

서우봉에서 내려온 후 한라산 만인보는 북촌지역 곶자왈로 걸음을 옮겼다. 채석장 주변 길은 드나드는 거대한 트럭과 날리는 먼지로 인해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트럭이 다니지 않는 임도를 통해 채석장에 접근하였다. 채석장을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에 채석장을 본 사람들도 엄청난 규모의 채석장에 놀랄 뿐이었다. 단일 규모의 채석장인데 축구장 10개 정도의 넓이로 가장 깊은 곳은 70m를 지하로 파내려 갔다. 어떻게 이처럼 거대한 채석장이 허가를 얻었는지 만인보 참가자들은 아연해 했다.

채석장을 잘 살펴보면 한 쪽은 채석을 마치고,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기존 채석을 했던 지역과 새롭게 채석을 한 지역이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바로 곶자왈 지역 채석을 할 때 행위제한규정 때문이다. 곶자왈 지역은 생태계보전등급 1등급부터 5등급까지로 구분되어 있는데, 채석장이 가능한 곳은 생태계보전등급 3등급부터다. 생태계보전등급 3등급 지역은 채석사업을 위해 매입하거나 임대한 전체 토지의 30%만 채석이 가능하다. 나머지 70%는 원형보전지역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채석이 끝나면 채석장은 원형복구를 해야 하는데, 지형자체는 절벽이 형성된 지역만 완만하게 하고, 밑바닥에는 토양을 복구하여 나무와 풀들이 다시 자라게 만든다. 문제는 원래 곶자왈의 형질이 사라진 기존 채석장이 다음 채석사업을 할 때는 70%의 원형보전지역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기존 채석장과 붙어서 새로운 채석사업을 하기 때문에 채석장의 규모가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다.

▶채석이 끝난 후

채석장을 걷다가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채석사업이 끝나면 곶자왈 원래의 지형으로 복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벽지역을 완만하게 토양으로 메우고 바닥도 토양을 채워 식생이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종종 채석 후 복구작업을 꺼려 고의 부도를 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토양을 구해다가 다시 트럭으로 옮겨오고 쌓는 것이 비용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고의 부도를 낸 업체는 다시 다른 업체로 허가를 받아 채석사업을 이어가고, 채석을 한 후 방치된 지역은 이후 사면이 불안정해 무너지거나 흙먼지만 날리는 황무지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이미 발생하였고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것임에도 담당 관청이 허가를 주면 그 이후는 어떤 관리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고의부도를 내고 사라지는 업체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다.

▲곶자왈 채석장에 폐기물을 버리고 난 후 황급히 포클레인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걸으면서 또 한가지 놀라운 현장을 보았다. 두 번째 방문한 채석장. 첫 번째 채석장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규모의 채석장이었다. 원래는 채석사업을 하던 곳인데 아마 채석이 끝난 곳 같았다. 한쪽에는 공장처럼 가건물이 있었는데, 재활용캔과 플라스틱이 쌓여 있었고, 그 맞은 편에는 마치 쓰레기 매립장처럼 쓰레기가 매립되고 있었다. 5톤 트럭으로 실어와서 황급히 하차하고 포클레인으로 덮는데, 하얀 먼지가 날리는 것이 분명히 건축폐기물 같았다. 곶자왈 지역을 채석을 한 후에 그것도 모자라서 쓰레기 매립장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비가 내리면 침출수가 곶자왈 지층으로 스며 지하로 내려 갈 텐데, 제주에 같이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찌 이런 행위가 가능한 것인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 채석장

근원적인 문제는 곶자왈 지역에 채석허가를 내준 것이다. 가장 먼저 보존해야 할 곶자왈에 환경적으로 가장 부담이 큰 채석사업을 허가한다는 것은 곶자왈 보존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이미 법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허가를 내 주었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관리감독의 부재는 좀처럼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일부 채석장은 허가 받은 면적을 넘어서 더 파는 경우도 있다. 소음 규제와 채석 후 복원 등 어느 하나도 '트리플 크라운'을 내세우는 도정에 걸맞는 것이 없다. 도정은 우선 추가적으로 곶자왈에 채석장을 허가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 현재 채석을 하고 있는 채석장에 대해서는 더욱 엄밀한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도의 환경보전의지에 대해 누구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라일보 - 천주교생명위원회-참여환경연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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