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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얘기를 돌려 말하기보다 분명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여자에게는 "너무 드세다"고 한다. 어른의 의견에 또박 또박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예의가 없다"고 하는 이런 언설들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여성들의 목소리에 붙이는 딱지일 뿐이고 청소년들을 아직 미성숙한 존재로만 여기는 기성세대의 시선일 뿐이다. 요즘 주변의 아이들에게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으면 모모 고등학교 가는 거요, 모모 대학에 들어가는 거란다. 내가 정작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돌아볼 여유없이, 밤늦도록 죄수처럼 붙잡아두는 보충학습과 학교수업 외에 받는 학원, 과외수업에 영혼을 잃고 살아간다. 내가 무엇을 배우고 성장할 것인가? 쉽게 대안을 내세우거나 결론을 제시하라는 것은 아니나 자기앞에 놓인 생에 깃든 고단함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이 다른사람의 생을 이해하는 시선으로 확장할 수 있는 일상을 만들 여가가 없다는 것이다. 공부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하는 인격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그래서 필요한 지점이 된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이 26일 학생인권조례를 전격 공포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 제주는 시기상조라며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도권 지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시작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밝아지기는 했지만 정작 내 아이들과 주변의 모습은 아직 입학도 하지 않은 학교생활이 두려워지기만 한다. 조례제정을 하면 교권이 추락한다고 하는데 교권이라 함은 교육과정 편성권이나 평가권이 아니라 오직 '학생지도권'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억압할 권리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질 뿐이다. 더군다나 체벌금지를 교권침해로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계 어느 민주국가에서 다른 존재에게 '폭력'을 합법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힘에 권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을까?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학내 집회를 보장받으면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여성의 참정권이 제한되고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던 시절에 여성의 권한이 제한된 이유는 '여성들이 미숙하고 판단력이 없는 존재' 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흑인인권운동 또한 같은 맥락이었지 않았는가! 이러한 인식이 고스란히 청소년들에게 적용되고 있을 뿐이다. 여러 가지 결정과정에 함께 참여하고 때로는 실수를 통해 반성하는 과정을 거쳐 성장해 나가야 할 시기에 학생다움을 강요하는 타인들의 시선에 재단되어야 하는 현실이 청소년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본다. 체벌을 통한 엄벌주의가 아니라 참여와 자율을 통해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 규칙을 지키게 해야 한다. 그랬을 때 자신이 그리는 세상을 꿈꾸게 할 수 있으리라. <이은화 前 서귀포여성회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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