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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어느 비 오는 날 저녁의 마당극 공연
입력 : 2012. 05.07. 00:00:00
그 날이 언제였더라? 4월의 슬픔을 이야기할 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유식하게 엘리어트의 시를 인용하여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 화두를 떼고, 얘기나 글을 시작한다. 제주의 4월은 거기에 1948년 무자년 4월 3일을 시작해서 올해는 몇 번째 맞이하는 4·3이라 하여 64번을 헤아리게 되었고, 4월 들어 연이어 4·3행사를 치르다보면, 굿 밭에 가 칭원하게 울다보면 굿이 끝나가듯 '비새(悲鳥)가 와서 슬피 우는 한 달'은 후딱 지난다. 그렇게 4월을 지내면, '들렁귀'에 철쭉꽃 피는 '영구춘화'의 5월이 온다. 그게 눈이 녹고 바람 자는 제주 봄의 완성이다. 그런데 올해는 윤달 들어 아직도 윤 3월이라 지난 4월의 이야기를 조금 더듬고 싶다. 나는 멋진 제주말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할 말 다 못하고 이야기를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앞에 쓴 칼럼 '미여지벵뒤' 이야기는 성공했고 '내난 가위' 이야기는 실패했다. '내난 가위'는 연기나는 집이니, 신은 연기[香] 냄새를 맡으며 인간을 찾아오고, 밤에는 횃불이 타오르 곳을 보고 인간을 찾아와 신과 인간이 하나 되어 춤추고 노래하는 찬란한 축제를 그렸으나 다 그려내기 전에 끝내버린 칼럼이 되고 말았다. 실패한 글쓰기의 경험이다. 4월은 24절후 중 청명과 곡우를 거치며 '청명 꽃 삼월'이니 개구리 땅속에서 나와 울고, 보리를 익게하는 비 온다 하여 곡우, 특히 이때 제주 사람들은 '고사리 장마'라 하여 고사리 철에 1년 용돈을 버는 할망의 1년 농사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4·3의 끝자락에 주운 공연을 통해 아름다운 축제, 전천후 축제, 미래의 축제를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날은 24절후 중 곡우(穀雨) 날이니, 4월 20일이었다. 그날은 비가 왔으니 언 땅 풀리고 개구리 봄 노래하는 곡우가 아니라 너무 추웠다. 비속을 헤매며 우산 들고 공연가는 것도 좀 뭣해 쉬고 있는데,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좀 도와줍서. 연극 햄수다. 구경 옵서. '산호수놀이'우다. 관객도 걱정되고 비와도 공연은 허젠마씸. 꼭 오십서 예?" "알았저게. 비만도 아니고 날씨도 추운디." 뒷날 토요일 공연도 있으니 꼭 보겠다며 관람을 포기했다. 뒷날도 비가 왔고 공연은 전날도 했고 오늘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굉장한 용기네 하며, 오늘도 가지 않으면 원망을 들을 것 같아 나는 비에 젖으며 21일은 공연을 볼 수 있는 완전무장을 하고 한라산 마당극 '산호수놀이'를 구경했다. 어김없이 비가 왔는데 비에 젖지 않았다. 좋았다. 내용은 강정의 싸움이었다. 2007년 시작한 싸움, 너무나도 뻔히 적을 알면서도 처절하게 깨어지는 힘들고 슬픈 싸움, 무자년 4·3처럼 다시 결연히 일어선 강정의 싸움을 이야기하는 마당극이었다. 같이 울고 같이 젖으며 80분은 후딱 지나갔다. 비가 두렵지 않은 아름답고 슬픈 경험이었다. 나는 이때 영국 에딘버러 지역축제를 떠올렸다. 안개와 비의 나라에선 비를 맞으며 우산을 쓰고 축제를 한다. 그렇다. 미래의 축제는 싸움에 날씨 탓이 안 먹히듯 전천후 축제, 비바람을 데리고 하는 아름다운 축제 말이다. 그렇다면 한라산의 공연은 비 밭에 조용히 번지는 공감이 있었던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그날 밤의 공연은 어느 비오는 날의 아름다운 마당극 공연으로 기억될 것이다. 비 내리고 춥고 바람까지 부는 날의 거칠지만 아름다운 싸움굿을 기다리며. <문무병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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