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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혹 TV에서 쿠바의 아바나 해변을 대할 때마다 아련히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이제는 가슴 한켠에만 남아 있는 탑동바닷가에 대한 추억이다. 도내 서부지역 한경면이 고향인 필자가 '유년(幼年)의 탑동'을 기억하는 건 순전히 '탑바리'에 살았던 작은 아버님 덕분이다. 방학만 되면 나는 성안(城內) 나들이를 감행하곤 했다. 시골 벽지에 살던 터라 도회지에 대한 호기심도 컸었고 일종의 해방감처럼 사촌들과 어울려 뛰노는 것이 마냥 좋았다. 그리고 그 주무대가 바로 탑동바닷가였다. 썰물 때면 드러나는 먹돌 해안은 고향의 바다와는 사뭇 달랐다. 그곳에서 우리는 멱을 감으며 게와 보들락 등을 잡았다. 특히 여름철 해질녁의 풍경(風景)은 TV에 비친 아바나 해변을 빼닮았던 것으로 회상된다. 탑동에 대한 추억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시절로 이어졌다. 당시 칠성로~탑동은 '젊음과 낭만의 분출구'였다. 계산은 뒤로 한 채 주인장부터 먼저 취해 떨어지던 '망치'란 소주집이 거기에 있었다. 갓 들어서기 시작한 카페는 문학지망생 등 젊은이들의 토론장이었다. 소주나 막걸리, 혹은 맥주에 거나해진 사람들의 종착지(終着地)는 어김없이 탑동방파제였다. 한 사람이 누우면 딱히 지나갈 공간이 없던 방파제 위에서 우리는 인생을 논했고, '떠나가는 배'와 '산타루치아' 등을 마음껏 불러 제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범양건영에 의해 탑동해안 공유수면 매립(16만5400㎡·약 5만평)이 시작되면서 '탑동의 추억(追憶)'도 함께 파묻혔다. 5공(共)이란 거대한 권력을 등에 업은 범양건영은 복개와 장학금이란 감언과 회유를 앞세워 불법매립을 강행했다. 환경오염과 어민 보상문제 등으로 격렬한 반발이 있었으나 철저히 묵살됐다. 개발이익의 지역환수란 명분(名分)은 병문천 복개라는 악순환으로 나타났다. 그토록 강조했던 구제주상권 부활 역시 공염불(空念佛)이 됐다. 행정당국과 토건세력의 결탁으로 가장 아름답던 탑동해안이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 송두리째 사라지는 최악의 결과만 초래한 것이다. 그 생채기가 완전히 아물기도 전에 제주자치도가 또다시 탑동 앞바다에 대한 추가 매립을 추진하고 있어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도의 계획은 탑동 일대 31만8500㎡를 매립해 숙박·상업시설과 여객선터미널을 비롯 영화관 및 광장 등을 조성하겠다는 것. 사업성을 이유로 면적도 국토해양부의 계획(10만8600㎡)보다 무려 세곱절이나 늘렸다. 재해방지와 친환경적 도심해양관광벨트, 마리나시설 저변확대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재해(災害)방지 보다는 경제성을 중시한 측면이 강하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의 논평처럼 "공유수면인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고 팔아먹는 방식으로 투자비를 보전받아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개발지상주의(開發至上主義)의 일단"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설혹 월파(越波)피해 저감 등을 위한 사업이 꼭 필요하더라도 최소한의 시설에 그쳐야 한다. 한번 파괴된 자연환경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제주자치도는 20여년 전의 잘못된 전철(前轍)을 결코 밟아선 안된다. 개발을 빌미로 한 더 이상의 생태계 파괴는 제주의 미래마저 암울하게 만들 소지가 크다. 아련한 '탑동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논설실장 kckim21@ihalla.com>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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