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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춘 칼럼
[김계춘 칼럼]'힐링'에 빠진 대한민국
입력 : 2012. 08.21. 00:00:00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 프랑스의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의 산문집 '걷기 예찬' 중의 일부다.

대한민국이 바야흐로 '힐링(Healing) 열풍'에 휩싸여 있다. 10년 전 불어닥쳤던 '웰빙(심신의 행복 추구) 신드롬'이 이제 '힐링(몸과 마음의 치유)'으로 옮겨진 양상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스페인의 산티아고와 제주올레로 대표되는 '걷기'가 자리잡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걷기의 원조(元祖)격이다. 종착지인 콤포스텔라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스페인식 이름 산티아고)의 무덤이 있어 원래는 가톨릭신자들의 성지(聖地) 순례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삶'을 찾는 사람들의 '안식처'로 바뀌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대부분 수백㎞에 이르는 '죽음의 고행길'이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신이 맨 배낭의 무게가 곧 인생의 무게임을 절감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불필요한 짐부터 하나씩 버리는데 익숙해지고 종국에 가선 자신의 욕심과 집착을 비움으로써 행복을 채우고 돌아온다는 것이다.

지난해만 100만여명이 찾은 제주올레도 '치유(治癒)의 길'로 불려진다. 아둥바둥 살던 일상에 지치고 상처받은 이들이 자연과 호흡하는 가운데 위로를 받고 새 삶을 모색하는 장으로 평가받는다. 불교의 '템플스테이'에 사람들이 대거 몰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근 들어선 '힐링 리더십'도 떠오른다. 과거의 수직적·권위적·일방적 리더십이 아니라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는 수평적 자세로 고통에 공감하며 치유의 힘을 주는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청춘들의 멘토이자 유력한 대권주자로 손꼽히는 안철수 서울대 교수, 런던올림픽에서 64년만에 첫 동메달을 획득함으로써 한국축구사의 새 역사를 쓴 홍명보 감독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수평적 소통(疏通)과 함께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읽고 고민을 같이 하며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이같은 '힐링 열풍'은 역(逆)으로 우리 사회가 결코 '건강'하지 않음을 뜻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외형적인 경제성장에도 불구 청년실업자라든가 비정규직, 명예퇴직자 등 삶에 불안을 느끼는 계층은 날로 확산 추세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격려, 희망임에도 현재로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한국 사회가 '이스털린의 역설'(부자 나라보다 가난한 나라의 행복지수가 더 높게 나타나는 것처럼 소득과 삶의 질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단계로 과도기적 상황이란 전문가의 진단도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의 그늘 속 우리의 삶이 여전히 고단하고 희망을 찾기마저 어렵다면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어느 대선(大選) 후보가 내세운 '저녁이 있는 삶'이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이기도 하다.

혜민 스님의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최고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그만큼 몸과 마음이 지친 현대인들이 많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혜민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순간순간 사랑하고, 순간순간 행복하세요. 그 순간이 모여 당신의 인생이 됩니다."

우리 사회의 '힐링 열풍'은 과연 언제쯤 멈춰질 것인가.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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