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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유형의 인간형을 의미하는 '아웃사이더(Outsider)'란 말은 1942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L'etranger)'이 나오면서 널리 주목받았다. 당시 영국에선 이 소설을 'The Outsider'로 번역했다. 그 후 영국의 콜린 윌슨이 1956년, 이제는 고전(古典)이 된 '아웃사이더'를 내놓으면서 문학상의 중요한 술어로 자리잡았다. 윌슨은 이 책에서 일련의 작품 주인공이나 철학자 및 작가 등을 묶어 '아웃사이더'라고 불렀다. 카뮈와 헤밍웨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작품에 나오는 몇몇 주인공, 철학자 니체와 화가 반 고흐, 무용가 니진스키 등이 모두 이 범주에 포함된다. 그가 정의한 '아웃사이더'는 삶에서 소원감(疏遠感)을 느끼고, 세속적인 삶에 안주하지 않으며, 무의미한 행태로 가득 찬 속물적인 일상에서 뛰쳐나와 실존(實存)하고자 하는 공통점이 있다. 충무로의 비주류 아웃사이더 김기덕 감독이 마침내 큰 일을 해냈다. 자본주의의 황폐함과 그 안에서 인간 존재의 구원 가능성을 묻는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 이를 두고 국내 영화인들은 "한국영화 100년사의 최대 쾌거(快擧)"라 말하고 있다. 한 감독은 "김기덕의 수상은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 부끄럽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동안 한국영화계가 그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김기덕의 아웃사이더 기질은 그의 이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최종 학력이 중졸(中卒)인 그는 거친 환경 속에서 잡초처럼 살아왔다. 영화 또한 제대로 공부해 본 적 없이 독학으로 깨우쳤다. 자신을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怪物)"이라고 스스로 평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고 제대 후엔 프랑스로 건너가 초상화를 그리는 거리의 화가 등으로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은 32세에 처음 봤다는 영화 두편이었다.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양들의 침묵'과 '퐁뇌프의 연인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 후 김기덕은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1996년 첫 영화 '악어'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하지만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몰고 다닌다. 그의 극단적이고 엽기적인 폭력, 사회 규범을 벗어나는 이야기들은 충격적이고 불편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문제 감독'으로 낙인 찍히는데 일조한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대변하듯이 밑바닥 인생들이 진흙탕에서 벌이는 몸부림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선(善)과 악(惡), 구원의 메시지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김기덕의 진가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빛을 발했다. 지난 2004년 영화 '사마리아'와 '빈집'으로 베를린과 베니스에서 연거푸 감독상을 차지하며 거장(巨匠) 반열에 우뚝 그 이름을 우뚝 올렸다. 그리고 이번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비주류 아웃사이더에서 '세계 영화계의 꽃'으로 화려하게 비상(飛翔)했다. '아웃사이더' 김기덕 감독은 별다른 스펙 없는 마이너리티도 성공한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얼마전 타계한 '시대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도, 최근 '강남스타일'이란 뮤직비디오로 1억뷰를 돌파한 싸이도 엄밀히 따지면 아웃사이더였다. 우리 사회의 진보(進步)를 앞당기는 건 아웃사이더들의 창조성과 역동성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논설실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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