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n라이프
힘든 오늘을 견디게 해주는 하나의 등불
세상을 바라보는 눈 '도대체 공부가 뭐야?'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입력 : 2012. 09.28. 00:00:00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국영수'를 선행학습하러 학원을 전전한다. 자녀의 성적이 부모의 행복이 되는 세상이고, 급기야 성적 때문에 목숨을 끊는 학생들까지 나오는 나라, 대한민국이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면 칭찬할 일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공부나 성적에 연연하는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세상인데도 정작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묻는 이들은 별로 없다. 그러니 아이들 또한 도대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지도 못한 채 오직 공부 잘하기만을 강요받고 있다.

이 책에는 보기 드물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열한 살 영희의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소문난 공부벌레다. 하지만 영희는 언니들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농사일에, 어린 막냇동생 돌보는 일까지 온통 할 일이 천지인데, 그렇게까지 억척스럽게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일까? 두메산골인 범골에서 나가는 길은 공부뿐이라는 작은언니 말에 영희는 대답한다. "새터에 가서 버스 타고 가면 되지. 왜 공부를 해야 범골을 나간다고 그래?" 엄마 아버지 밑에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는 영희에게는 언니들의 공부 욕심이 헛되어 보일 뿐이다.

사실 아버지가 딸들이 도시로 나가는 걸 반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때는 70년대, 간첩 관련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 이북 지역 지주의 아들로 살다가 월남한 아버지는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간첩이 자신을 잡으러 온 줄 알고 벌벌 떠는 아버지는 딸들이 넓은 세상으로 나갔다가 발각돼 위험에 빠질까봐 노심초사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영희는 자신만은 곁에 남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5학년이 된 영희는 언니들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돼지를 기르고 누에를 치는 부모 곁에서 일손을 돕다가 언니들이 왜 그렇게 공부를 했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새로 부임해온 담임선생님 덕에 동시에 푹 빠진 영희는 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꾸면서 중학교 진학을 고민한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큰언니,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작은언니가 절실히 공부를 했던 이유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는 범골을 나가는 길이기도 했지만 힘든 오늘을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등불이었던 것이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인 이 책은 70년대 농촌 풍경과 풍속을 잘 살려 놓고 시대적 아픔까지 담아 읽는 재미를 준다. 무엇보다 공부는 막연한 외부의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꿈을 꾸기 위해 마음을 다해 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공부해야 할 진짜 이유를 생각해보게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기르고 자신의 힘으로 인간과 삶에 대해 알아가는 초등 고학년을 위한 책이다. 윤영선 지음. 바람의아이들.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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