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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키 마사오의 만주 커넥션과 그 유산
해방과 패전 60년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입력 : 2012. 09.28. 00:00:00
해방과 패전으로부터 60여 년. 한국과 일본 간 감정의 밑바닥에는 두 나라의 '뿌리'라고도 할 만한 공통의 모태인 만주국이 자리하고 있다. 박정희를 군인으로 변신시킨 것도,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를 정치가로 단련시킨 것도 모두 일본제국의 분신이었던 만주국이다.

박정희는 아시아의 뉴 아틀란티스로 불쑥 솟았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제국인 만주에서 제국 군인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서 전쟁 시기를 보냈다. 해방 후에는 한국의 대통령이 되어 근대화를 이룬 독재자로 이름을 날렸다.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국에서 산업개발을 추진하고 전후에는 A급 전범으로 처벌을 받았다. 이후에는 총리 자리에 올라 일본의 고도성장을 주도한 '쇼와(昭和)의 요괴'라 불렸다.

이 책은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라는 해방 후 한국과 전후 일본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군인 정치가와 관료 정치가를 중심에 두고,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만주국의 역사 그리고 그 제국의 유산을 밝혀보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두 인물을 통해 만주국과 전후의 일본, 해방 후 한국의 연속성에 주목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군인 박정희는 권력의 본질이 폭력에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철(鐵)은 곧 국가"라는 슬로건 아래 국가의 재건과 총력안보라는 '돌격적 근대화'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미스터 통제(統制)' 기시 노부스케 역시 예사롭지 않다. 국책수행에 섬뜩할 정도의 집념을 불태우며 "돈은 걸러서 쓰면 그만이다"라고 호기를 부린 그도 권력의 악마적 화신 자체였다. 전쟁 전에는 국가개조의 혁신관료로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고, 전쟁 후에는 보수합동을 낳은 주인공으로서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올라 고도성장의 틀을 만들고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주도했다.

만주국은 훗날 독재자와 요괴의 요람의 땅이기도 했다. 박정희가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 즉 신경(新京) 2기로 입학할 즈음인 1940년 4월, 이미 만주국을 벗어나 옛 둥지인 상공성의 차관으로 복귀한 기시 노부스케는 혁신관료의 리더로서 총력전체제의 핵심인 경제신체제 확립을 지휘하는 중이었다. 한편 만주국은 사회진출의 기회가 막힌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에게는 하나의 신천지였다.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본육군사관학교를 거쳐 만주국군 보병 제8단의 소위로 임관한 박정희에게 만주체험은 운명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도쿄대 대학원 강상중 교수와 제주 출신의 현무암 훗카이도대 대학원 준교수가 지었다. 이목 옮김. 책과함께.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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