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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일상에도 불현듯 배낭 하나 둘러메고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올레 길의 아름다운 풍광은 쳐다만 봐도 쌓였던 스트레스를 녹아내리게 해 힐링 코스로 급부상했지만 이제는 혼자서 맘 놓고 다닐 수 없는 길이 됐다. 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론은 들끓었고 그 대안으로 CCTV가 설치됐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이 백주대낮에도 봉변을 당하는 상황에서 어두운 밤길은 여성들에겐 보장 받지 못하는 모험의 세계일 뿐이다. 어릴적 과수원 집에서 살다보니 늦은 밤 혼자서 집에 오는 일은 큰 스트레스였다. 어머니와 아버지, 기르고 있던 하얀 개까지 늘 버스정류장을 지키고 서야만 했고 어쩌다 일 때문에 부모님이 오지 못할 땐 숨도 쉬지 않고 집으로 달려야 했던 기억들이 있다. 성폭행이 다행히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그 사건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늘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런 일이 나에게만 일어났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른이 돼서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 혹은 성희롱의 경험을 안고 있었다. 미처 얘기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으리라. 20여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안전해지기는커녕 더욱 잔인해지고 무서워졌다. 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임시조처로 대안을 내놓긴 하지만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책이 나오지 못해 유사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애를 하더라도 여성이 남성에게 구애하는 걸 어색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 자신을 향한 남성의 스토킹을 폭력으로 보기보단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등은 여성들이 주체성을 회복해야 할 문제이면서 사회 구조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해결해야 할 과제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연인 관계에서도 결혼을 한 아내의 입장에서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 부부 사이에도 강간이 인정되는 사회가 됐지만 사회 전체적으론 성폭력사건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 범죄자를 잘 검거하는 사회분위기에 앞서 범죄가 발생하기 어려운 사회여야 한다. CCTV만 설치하면 안전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인 양 하는 태도를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성문화와 권력관계에 대한 고찰 없이 성폭력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가해자 처벌강화방식이 대두됐다. 대부분의 가해자가 특별한 범죄자가 아니라 생활 주변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다. 이들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성문화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만 낮출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공교육에서의 깊이 있는 인권교육과 성교육을 정규화하고 언론의 성폭력 기사 보도 가이드라인 마련, 수사재판의 전문화 노력 등 대선정국을 앞두고 인기를 위한 단기적인 공약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 내가 살아가고 내 딸들이 살아갈 안전한 여행 길을 보장받고 싶다. 어두운 밤길 환하게 밝혀주는 가로등을 설치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비상벨을 누를 수 있고, 늦은 귀가길 여성전용택시를 탈 수 있는 낮은 단계의 장치라도 서둘러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이은화 전 서귀포여성회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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