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며칠 후면 내 40대가 끝난다. 내후년 생일까지는 만으로 40대라고 부득부득 우길 수도 있지만, 그게 다 부질없는 발악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한 해 동안 괜히 우울하고 쓸쓸하다는 생각에 빠져들 때가 많았다. 길을 걷다가, 하늘을 쳐다보다가, 책을 읽다가, 드라마를 보다가, 노래를 듣다가 눈물을 흘린 날이 부지기수다. 지난달엔 40대의 마지막 가을이 너무나 아쉽다며 오름 다녀오는 길에 대낮부터 대취한 적도 있다. 허나 기어이 40대는 마감해야만 한다. 길게 잡아 100살까지 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제부터는 인생의 후반전이다. 지금까지 열정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부터는 부끄러운 인생이 되지 않도록 뒤돌아보며 살아야 한다. 스포츠도 그러하듯이 후반전과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 불세출의 복서였던 무하마드 알리는 매 라운드의 마지막 30초에 혼신을 다하는 시합을 벌임으로써 좋은 평가를 받았다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김만덕은 인생의 마무리를 잘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김만덕이 일생 동안 줄곧 바람직하게 살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심노숭의 '계섬전'(1797)에 따르면 "만덕은 품성이 음흉하고 인색해 돈을 보고 따랐다가 돈이 다하면 떠나는데, 그 남자가 입은 바지저고리까지 빼앗았"으며 "육지에서 온 상인이 만덕으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이가 잇달았더니 이리하여 그녀는 제주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심노숭이 1794년 제주에 4개월여 머물렀던 인물임을 감안하면 이 부정적인 기록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이처럼 만덕은 돈을 버는 과정에서는 찬양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말년에 재화를 풀어 기민을 구휼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존경받을 인물이 되었다. 인생의 마무리가 좋았기 때문에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김만덕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이들도 있다.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다가도 인생의 후반전에 전혀 다른 삶을 삶으로써 자신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이들이 그들이다. 가만히 있어도 훌륭한 인물로 남을 텐데 납득할 수 없는 언행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부정하는 양상을 보이니 애처롭기까지 하다. 김지하 시인이 대표적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그는 '오적'을 통해 재벌, 국회의원, 장성, 고급공무원, 장차관 등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를 적나라하게 폭로함으로써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1991년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에서 이상한 발언을 하더니 이번 대선 정국에서 완전히 자기부정의 쐐기를 박았다. "국민들 먹고살게 하기 위해 애 많이 쓰신 분"으로 박정희를 추어올리고 "여성시대를 맞아 잘 꾸려나갈 것으로 믿는다"며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이제 김지하는 이광수에 비견될 만큼 반면교사(反面敎師)의 확실한 본보기가 되어버렸다. 왕년에 독립투사였던들 무슨 소용이랴, 결국엔 친일분자가 되어버린 것을! 왕년에 민주투사였던들 무엇하랴, 결국엔 친독재의 길을 걷고 만 것을! 이명박 대통령은 또 "내가 왕년에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왕년은 현재의 실천과 연결되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나중에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면 왕년은 사회적 해악의 수단으로 전락할 따름이다. 지천명을 앞둔 나는 내세울만한 왕년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다소나마 아름다운 후반전이 되도록 노력코자 한다. 적어도 내 자식과 내 제자들에게는 큰 부끄러움이 없도록. <김동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