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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하루를 시작하며]마음으로 세상보기
입력 : 2013. 01.09. 00:00:00
'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어버린 소년이 절망적 상황을 극복해가는 인간승리를 그린 성장소설이다. 특히 글 전편에 흐르는 진한 휴머니티가 감동을 준다. 눈을 잃는다는 건 곧 세상을 잃는다는 엄청난 충격이다. 모든 걸 볼 수 없으니 열두 살 주인공은 막막하다. 이를 바라보는 부모나 이웃은 더 먹먹하다. 어쩌지 못하는 상황, 본인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극복할 수 있도록 절제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주변의 섬세한 배려가 감동이다. 평소 이웃들이 장애우들에게 어떠해야 하는지를 무언으로 대변한다. 소년은 결국 시련을 극복한다. 괜찮다고, 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며, 그래서 점자도 익히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밝게 살아간다.

언젠가 영지학교에서 시각장애 체험을 했던 적이 있다. 눈을 가리니 암흑천지다. 오직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길을 가기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아차하면 천길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생각만으로도 숨이 멎는다. 평생 볼 수 없다면 그 낭패감이란 어떨지, 상상도 힘들다. 그래도 그들은 의지로 살아간다. 세상만사 볼 것 못 볼 것 마음으로 정제해서 그런지 그들에겐 사악한 마음이 범접을 못한다. 천사 그대로다. 어디 시각 장애뿐이랴.

이십여년 전 특수 장애아들을 맡아 교육을 시킨 일이 있다. 지적 장애, 신체장애, 이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그들 애환이 어떤 것인지를 헤아리는 것은 마음만으로도 아프다. 한 걸음 움직임, 글 한줄 익히기가 힘들었지만 마음은 천사였던 태와 영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찾아보지도 못한 미욱함에 가슴 절인다.

사지가 멀쩡하고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가. 어떤 이는 못생긴 눈이라고 쌍꺼플 시술하며 눈을 타박한다. 눈이 중요하니 그럴 법도 하다.

두 눈을 잃는 주인공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절규엔 차라리 숨이 멎을 듯하다. 정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니? 그렇다. 이는 나에게 던지는 화두로 꽂힌다.

우리는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오감을 통해서 얻어지는 정보로 사물의 실체를 인식한다. 시각이나 지각이 없으면 세상 이치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시력이 좋다한들 육안으로 감지되는 인식만으로 사물을 온전히 파악할 수가 없다. 또한 아무리 용한 투시경이나 천리안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감각기관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을 터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걸 유식과 무식으로 묶어보면 보이는 지식세계는 그야말로 한 점에 불과하다.

우리는 무엇인가 사색에 잠길 땐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보면 세상이 보인다. 부릅떠서 안 보이던 것이 비로소 보이는 게 마음의 눈, 바로 심안이다. 심안으로 세상보기! 이는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고 지각을 일깨우는 일이다. 만물의 무량세계도 헤아릴 수 있는 현미경이요, 천리안이다.

심안에도 시력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그것이다. 잘 보려면 깊고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독서와 사색으로 시력을 높일 일이다.

마음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향기를 담으면 향내 나고 부패를 담으면 구린내가 난다. 사회를 오염시킨다. 마음그릇에 감사와 배려, 진실과 정의, 유머와 사랑 같은 미덕의 보석들로 가득 채웠으면 좋겠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세상,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밝힐 일이다.

<이경주 서귀포시민의 책읽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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