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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형, 눈 맞은 귤밭처럼, 마저 추스르지 못한 가슴으로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언젠들 한가한 적 있었습니까만, 유독 지난 밀감 수확 철은 거의 하루건너 하루 비 눈 날씨였습니다. 길은 멀고 마음은 급했지만, 밀리고 밀리는 일정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어찌할 것입니까? 하늘의 뜻인걸…. 짐짓 느긋한 마음으로, 주어진 그 상황에서의 최선을 찾으며 여까지 온 것입니다. 웬만한 눈 날씨에는 귤 따기를 멈추지 않았어요.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일하는 아줌마들을 태우고 농장에 도착하면, 사위(四圍)는 아직도 어둑합니다. 서둘러 불을 피우고 몸을 녹입니다. 이윽고 먼동이 트면, 귤이 보이기 시작하면, 일을 시작하는 것이지요. 방풍림 잘라 낸 아름드리 통나무로 모닥불을 계속 피웁니다. 언제든 손 시리면 불을 쬘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활활 타오르는 그 불꽃을 보노라면, 뭔가 뜻 모를 울분이 더불어 타고, 지친 가슴도 덩달아 일렁입니다. 선잠 깬 산노루가 화들짝 내달리는, 이 들녘 어느 쯤서 둥-둥-둥- 북소리도 울려 퍼질 듯합니다. 넉넉한 그 불망굴에 은박지 고구마를 수북이 구워놓으면, 이 시베리아만한 눈보라에도, 마음은 이내 풍족해지는 것입니다 눈 오기 전, 늦어도 연말 전에, 수확을 끝내려고 부단히 서두는 까닭은, 눈 맞고 날이 차면 동해(凍害)를 입어, 바로 상품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각고의 공든 탑이 일순에 무너지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 마음으로, 한사코 곱게 따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 귤은, 한 생을 걸어 놓은 농심의 꿈이며, 그 분신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어떻거나 0형, 경황없이 맞이한 새해도, 새해는 새해! 지난 1일엔, 새벽어스름을 달려 삼매봉(三梅峰) 남성대(南星臺)에 올랐어요. 새아침의 해돋이를 보려함이었습니다. 어느 날엔들 그만한 해돋이가 없었겠습니까만, 그 '새아침'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당선인처럼, 대번에 그는 신성이고 믿음이고 범접 못할 위엄이 되는 것이지요. 7시 37분, 그 해돋이 시각을 미리알고, 서둘러 6시에 삼매봉에 도착했어요. 구역구역 구름같이 몰려드는 사람들로, 삽시에 주차공간이 꽉 차는 것이었습니다. 나 혼자 깨어있는가 싶었더니 웬걸, 이 서귀포가 다 깨어있었던 것입니다. 쌍쌍이, 친구들, 더러는 혼자, 그 남성대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핸드폰을 높이 들이대며, 해돋이의 그 동해바다를 지레 스케치하고 있었습니다. 색동옷 껴입은 어느 애완견이, 영문을 알랴만, 둘레둘레 명절날처럼 신바람 납니다. 키가 훌쩍 큰 외국인도, 펼쳐진 앞 바다와 만설의 한라산과 신구 서귀포 시가지의 절묘한 배열에 "원더풀!"을 연발하며,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러대고 있었어요. 귀한 것은 역시 귀한 것인지, 해돋이는 좀체로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요. 한참을 뜸들이며 기대감만 한껏 부풀려놓고, 끝내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구름 사이로 이글거리는, 그 해돋이의 두어 평 정염을 본 것이니, 기어이 그 정염의 한 복판을 솟구쳐 오르는, 바닷새의 힘찬 비상(飛翔)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니, "아-이 아침, 이만하면…"을 되뇌었습니다. 0형, 살다보면 콩 먹은 소처럼 질펀하게 다 채울 수야 없는 거잖아요. 그러기에, 한 무리 까치가 날아들어 출렁거리는, 그 실한 청솔가지의 하산 길은 가벼웠어요. 그동안 쌓인 심신의 피로도 더러 씻긴 듯 한결 가뿐하였습니다. 얼떨결, 새해 새아침의 그 해돋이를 '돋당 탈 타 먹듯' 맞이하였다 해도, 이제사 0형, 귀먹은 황소처럼, 해동(解凍)의 먼 들녘을 뚜벅뚜벅 끌 것입니다. 느긋이. <강문신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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