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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하루를 시작하며]우리 회사는 장애인 고용업체
입력 : 2013. 01.23. 00:00:00
회사를 창업하고 우연한 기회에 장애인 직원들을 고용하게 됐다. 우리 회사에 장애인들이 고용돼 적응하기까지 누구보다도 당시 지도 선생님의 공이 컸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선생님은 너무나 훌륭한 분이었다. 그들과 함께 출퇴근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밥 먹고 상담도 하셨다. 그분의 열정과 헌신 덕분에 꾸준히 장애인 직원을 고용할 수 있게 됐다.

수습기간을 거쳐 첫 장애인 직원을 채용했다. 그들이 처음 한 일은 꽃을 말리는 작업과 상자를 접는 일이었다. 그 당시 우리 회사는 토산품을 취급하고 있었다. 당시는 IMF 외환위기 때여서 신혼여행객들이 제주를 많이 찾을 때였다. 단체에서 개별관광객으로 새로운 여행 패턴도 생기고 있었다. 개별관광객은 상품을 믿고 구입할 만한 기념품점 정보를 직접 구해야 했다.

처음 토산품을 취급하면서 아무런 경험도 없는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소매업이었다. 우리 지역에도 토산품점들이 더러 있었고, 주변에 있는 공장에서도 토산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공장 건물 한편을 토산품 가게로 임대해 줬는데 그 주인이 사정상 문을 닫은 상태였다. 돈이 없다 보니 그 자리에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중고로 구입해놓고, 우리가 팔고 있던 옥돔과 젓갈만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나눠져 있어서 크게 돈을 번 건 아니었지만 그때는 정말 장사하는 재미있었다. 그래도 성수기엔 일손이 달렸다. 열쇠고리와 휴대전화고리, 비누, 오미자차 등이 잘 나갔고, 제조시설이 없는 우리 회사는 제주의 유채꽃이나 조팝꽃을 직접 말려서 에폭시로 굳혀 만든 열쇠고리와 휴대전화고리를 만들어 팔았다. 가격을 떠나서 다른 곳에 없는 우리만의 상품을 만든다는 기쁨이 컸다. 장애인 직원들이 꽃을 말리고 붙이는 작업을 했고, 그것도 하기 힘든 친구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상자를 접는 일을 맡았다.

그 친구들과 일하면서 재미있는 일도 안타까웠던 일도 참 많았다. 같이 일을 해보면 장애등급과 상관없이 일하는 성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세상에는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못난 사람도 살 수 있고 잘난 사람도 살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1등도 하고, 누군가는 100등도 해야 하는 것이다. 장애인들을 고용할 때는 현장적응을 위해 하루 이틀정도 연습을 시킨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취업을 시켜서 3개월간 자기의 일을 할 수 있는지 지켜보면서 기다려 준다. 많은 경우 3개월 정도면 어느 정도의 자기 몫을 해낸다.

한 장애인이 있었다. 빗자루질도 잘 못할 정도로 몸이 불편했다. 그 당시 회사에서는 한라봉차를 만들기 위해 한라봉을 가공하는 일이 한창이었다. 그래서 한라봉 꼭지와 변색된 부분을 칼로 도려내는 작업을 줬는데 칼을 무서워해 일을 할 수 없었다. 상자 접는 일을 시켰는데도 그것 역시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공단측에 이야기를 해서 고용을 할 수 없다고 통보를 했는데 다음날 그의 아버지가 공장으로 찾아 오셨다. 그 아버지는 금융권에서 정년퇴임을 하신 분이었는데 자식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까지 보이셨다. 자신은 점점 늙어가고 자식이 홀로 설 수 있게 하기 위해 아버지가 함께 출근해서 곁에서 지도하시겠다는 말씀까지 했지만 우리는 그 뜻을 받아주지 못했다. 정말 너무도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던 안타까운 기억이다.

우리 회사의 오늘이 있는 것은 그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꿈과 땀방울로 우리 공장은 오늘도 활기차다. <양경월 제주사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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