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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설날에 읽는 동화]쪼, 덤비다
엄마 잃은 슬픔에 앙갚음 나선
들쥐 남매의 따뜻한 이야기
/강봄 기자 spring@ihalla.com
입력 : 2013. 02.08. 00:00:00
"애당초 쟤들 해칠 생각은 네가 해낸 거야."
"알아. 하지만 나도 미처 몰랐지.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하고 눈앞에서 보는 것이 이렇게 다를 줄은.
안되겠어. 너무 가엾어. 엄마를 잃었을 때 우리 같아, 쟤 지금 모습이."




"우리 쟤들 혼내주자"
"걔들 부모 꽤 속상하겠지?"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해 낸 것은 수리부엉이가 새끼를 낳은 것을 알고 난 뒤였습니다. 실은, 우리가 아니라 쪼 혼자 해낸 생각이었습니다. 수리부엉이가 터 잡아 사는 숲 선바위의 허리께에 우물처럼 깊고 어두운 동굴이 있습니다. 그 동굴의 입구쯤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는 쪼는 단박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아채고 속삭였습니다.

"우리 쟤들 혼내 주자, 오빠."

그래요, 쪼는 내 여동생입니다. 기분이 좋아지면 "쪼, 쪼, 쪼" 하고 소리 지르는 버릇이 있어, 내가 붙여준 이름입니다.

우리가 엄마를 잃은 것은 쪼에게 이름이 생기기도 전이었습니다. 엄마는 혼자서 우리를 낳고 혼자서 키웠습니다. 우리는 아빠의 얼굴조차 모릅니다. 들쥐 가족의 모든 아빠는 떠돌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들 그런 생활에 익숙합니다.

"해코지당한 새끼들을 보면 걔들 부모가 꽤나 속상하겠지?"

안 그래도 초롱초롱한 두 눈망울을 더욱 반짝이며 쪼는 다짐받듯 나에게 물었습니다. 쪼는 나보다 한 살이나 어리지만 영리하고 다부집니다. 들쥐에게 한 살 차이면 꽤 큰 터울입니다.

그때까지는 무엇을 어떻게 할까 작정하지 못한 채 막연히 기회만 몰래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쪼가 마침내 기특한 생각을 낸 것입니다. 이럴 때 쪼와 함께인 것이 나는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해 뜨기 전의 새벽 찬 기운이 털 사이로 바늘처럼 파고듭니다. 나는 푸르르 몸을 떨었습니다. 꼭 찬바람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만히 엄마를 불러 봅니다. 밀려드는 그리움, 드디어 때가 왔다는 흥분,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두려움까지 한꺼번에 엉켜서 나를 휩쌉니다. 피돌기가 갑자기 빨라지며, 털이 곤두서고, 등뼈가 뻣뻣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쪼는 나보다 더 흥분했습니다. 풀숲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나를 저만치 앞질러 달려 나갑니다.

나도 걸음을 서둘렀습니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리부엉이는 두 눈이 한껏 밝아지는 어둠 속에서 먹이사냥을 하고, 새벽이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 전에 우리의 계획을 해치워야 합니다. 가는 길은 우리 둘 다 환히 알고 있습니다. 놈의 둥지를 살피기 위해 몇 번이고 다녔던 길입니다.

아직 밤의 고요에 잠긴 숲은 아늑하고 평화롭기까지 한데

지금은 밤과 아침의 중간 시간입니다. 우리의 '전쟁'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아직 밤의 고요에 잠긴 숲은 아늑하고 평화롭기까지 합니다. 어둠이 제 세상인 모기떼의 앵앵거림도 숲의 평화를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거진 나뭇가지와 잎들 사이로는 벌써 새벽빛이 비집어들고 있습니다. 그 빛을 흩뿌리는 것은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거미줄입니다. 밤사이 거미줄에 맺힌 이슬방울들을 숲바람이 흔들어 새벽 어스름 속에서도 맑고 아름다운 빛을 사방으로 흩어 놓고 있습니다.

빈터에 발을 들여놓자 다른 으스스한 소리가

숲이 끝나는 곳에서 수리부엉이의 선바위까지는, 벼락 맞아 쪼개져서 아예 누워 버린 늙은 너도밤나무 한 그루 말고는 씀바귀와 엉겅퀴가 주인인 빈터입니다. 그 빈터에 발을 들여놓자 숲바람하고도 다른 으스스한 소리가 들립니다. 사방을 들러보았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헛들은 소리였나 봅니다.

 "엄마…" 앙갚음의 기회가 눈 앞에

그것은 그 날 밤에 들었던 바로 그런 소리였습니다. 처음엔 바람소리인가 했습니다. 곧이어 달빛을 등진 시커먼 그림자가 공중에서부터 우리를 덮쳤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애들아, 달려라!"

숲이 끝나는 어디쯤인가의 나무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나 봅니다. 수리부엉이는 커다란 두 눈에 도깨비불처럼 기분 나쁜 빛을 켜고 바람처럼 날아와 갈퀴 발톱으로 순식간에 엄마를 채고는 다시 밤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농부의 곡괭이처럼 단단하고 매서운 부리는 쓸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달빛 속으로 날아가는 수리부엉이의 두 귀에는 뾰족한 깃털이 악마의 뿔처럼 달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작정 내달렸습니다. 나는 달리면서 문득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애들아, 어서 달려라!" 엄마는 계속 외치며 수리부엉이와 함께 선바위 쪽으로 사라져갔습니다. 쪼도 내 허리에 바싹 붙어 달리며 이 모든 광경을 보았던 모양입니다.

그 날 밤의 일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밥을 먹거나 장난을 치며 놀다가도, 우리 중의 누군가가 방귀를 뀌어 서로 바라보며 깔깔 웃다가도, 마치 칼에 벤 상처가 아물지를 않고 자꾸만 다시 벌어지듯, 그 날 밤의 일이 문득문득 되살아납니다. 이럴 때 소리 내어부르면 엄마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실 것만 같습니다. 마치 마술처럼. 그래서 불러 봅니다. "엄마!" 그러나 마술은 일어나지 않고, 가슴만 더 휑합니다. 그러면 거듭거듭 다짐을 합니다. 꼭 앙갚음을 해 주마고. 그리고 마침내 그 때가 온 것입니다.

▲삽화=고보형 화가

상상도 못했던 광경에 온몸 얼어붙어 꼼짝달싹

그러나 우리의 그런 계획은 쪼와 내가 선바위에 도착했을 때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어미가 집을 비운 수리부엉이 둥지를 노린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온 손님이 있었습니다. 새끼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바위 밑에 굴러 떨어져 있고, 올려다보니 바위 위 둥지로부터 능구렁이가 서두를 것 없다는 듯 느릿느릿 기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벌써 잡아먹혔는지 나머지 새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광경에 너무 놀라서 나는 몸이 꼬챙이에 꿰인 것처럼 꼼짝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 이럴 것입니다. 나는 이끼옷을 두껍게 입은 바위 뒤로 가 숨었습니다. 어느새 쪼도 가던 길을 되돌아와 내 곁에 바싹 붙어 있습니다.

엄마한테 들은 적이 있습니다. 능구렁이는 독은 없지만 천적인 오소리의 코를 물고 목을 칭칭 감아 숨 막히게 할 만큼 힘이 셉니다. 하물며 우리 같은 들쥐쯤은 한 입에 집어삼킬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놈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붉은 줄, 검은 줄이 얼룩덜룩 그어진 비늘무늬가 놈의 움직임에 따라 어스름 속에서 번득입니다. 천천히, 그러나 물 흐르듯 부드럽게 굽이치는 움직임이 으스스하지만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아니, 아름다워서 더 소름이 돋습니다.

능구렁이는 작지만 까만 보석 같은 맑고 빛나는 눈망울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사냥감을 노려보느라 놈은 우리가 와 있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듯합니다. 알아챘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듯, 검은 불꽃같은 혀를 과시하듯 연신 날름거리며 먹이를 향해 기어갑니다. 천천히, 굽이치며, 물 흐르듯이.

"꼭 이유가 있어야 돼?"
 "너무 어리잖아…"


우리가 처음 본 것은 무슨 솜뭉치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솜뭉치가 갑자기 쇳소리로 날카롭게 울어댔습니다. 그것은 겁에 질려 지르는 비명이었습니다. 그제야 우리는 그것이 수리부엉이 새끼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새끼 수리부엉이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울음소리만 들었을 뿐입니다. 선바위 아래서는 둥지 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둥지에서 떨어지며 어디가 잘못됐는지 새끼 수리부엉이는 일어서려고 애써 보지만 번번이 꼬꾸라집니다. 그 때마다, 몸에 비해 커다란 머리가 땅에 방아를 찧습니다.

그것은 나사운 날짐승의 새끼라기보다는, 아이들이 갖고 놀다 속을 채운 솜이 터져 나와서 다른 쓰레기와 함께 내다버린 못난이 헝겁인형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 그 솜털들이 파르르 날리며 그 사이로 연한 분홍빛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그런 모습이 가엽기도 하고, 바보스럽기도 했습니다. 저것이 자라서 숲의 포식자(다른 동물을 먹이로 하는 동물)가 된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의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곁에 있던 쪼가 내 귓구멍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속삭였습니다. "저런 약골인 줄은 몰랐네."그러고 덧붙였습니다. "오빠, 아무래도 우리가 쟤를 도와줘야 할까 봐."

나는 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를 못해 얼른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곧 말뜻을 알아듣고는 기가 찼습니다.

"왜?"

"이유가 꼭 있어야 돼? 왜겠어, 너무 어리잖아."

"애당초 쟤들 해칠 생각은 네가 해낸 거야."

"알아. 하지만 나도 미처 몰랐지.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하고 눈앞에서 보는 것이 이렇게 다를 줄은. 안되겠어. 너무 가엾어. 엄마를 잃었을 때 우리 같아, 쟤 지금 모습이."

"정신 차려. 저건 수리부엉이야. 쟤도 어른이 되면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들 거야."

"그건 그 때 가서의 일이고."

쪼의 결심이 얼마나 굳센가를 그 애의 눈빛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쳐다보는 두 눈에 힘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그 서슬에 나는 약간 기가 죽어 혼잣말로 투덜거립니다.

"설령 싸운대도 우린 능구렁이의 적수도 못 돼, 얘."

"누가 맞서 싸운대? 시늉만으로 충분해. 달려들다 내빼고, 다시 달려들어 성가시게 구는 거지. 놈이 귀찮아질 때까지 계속. "

"그런 일일랑 어른 수리부엉이한테 맡겨. 돌아올 시간이 됐어."

우리가 입씨름을 하는 동안 능구렁이는 바위에서 땅위로 내려왔습니다. 쪼가 외쳤습니다.

"시간이 없어. 안 하면 나 혼자라도 할 거야."

쪼는 주위의 공기를 몽땅 삼길 듯 크게 숨을 들이켰습니다. 그렇게 들이마신 숨을 잠시 멈췄다 한꺼번에 내쉬었습니다. 마치 가슴 속의 두려움을 한 번에 뱉어내려는 듯이. 이제 쪼는 당장에라도 달려 나갈 기세입니다. 나는 온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달리 어쩔 수가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나는 마음이 다급해져서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넌 참 못 말리는 애구나. 좋아, 어디 한 번 해 보자."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쪼는 내닫기 시작했습니다. 막 밝아온 아침의 햇살기둥 속에서 쪼의 모습은 눈부신 황금빛이었습니다. <끝>



[지은이 약력] 송상일

1945년 제주생 ▶197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2005~2011년 한라일보 '송상일의 세상읽기' 연재 ▶평론집 '시대와 삶'▶에세이집 '국가와 황홀' ▶동화집 '물음표의 가출'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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