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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2월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지난 한 달간 묵은해의 마무리에 심신이 바빴다.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영험한 흑사(黑蛇), 계사년에 나는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이룰 것인가. 설 연휴의 북적거림 속에 지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접었다. 이제야 비로소 새해가 되었다는 실감이 난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께서는 정초가 되면 그해의 절기를 일러주셨다. 어머니가 궁금해 하시던 장 담그는 날부터 이웃집의 이사와 산소를 이장하는 것까지 택일을 해주셨다. 집안 큰일에 손(損財) 없는 날을 가려주셨던 것이다. 내 운세도 점쳐 주셨다. '올 한해 물은 가까이 하지마라. 학업 운이 있으니 공부에 열중해라.' 평소엔 말씀이 많지 않으셨지만 해가 바뀌면 언제나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허름한 책을 뒤적이며 연로한 아버지가 풀어놓은 이야기는 내게 신의 계시처럼 준엄히 다가왔고 어린 나는 이를 실천하려 무던히도 애썼다. 사실 그때처럼 아버지가 용해보인 적은 없었다. 쉰둥이인 나에게 늘 억압의 대상이었던 실향민 아버지, 그러나 언제나 해가 바뀌는 정월엔 시간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는 예언자의 모습으로 내 앞에 계셨던 것이다. '어떻게 좋은 날을 가려낼까? 앞으로 일어날 일은 어떻게 알 수가 있는 거지?' 어린 마음을 움켜쥐었던 그것은 다름 아닌 천체의 운행으로 하루, 한 달, 일 년의 시간개념을 정리해놓은 책력(冊曆)의 힘이었다. 주역(周易)의 음양설(陰陽說)을 바탕으로 인간의 길흉을 예언하는 토정비결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연초에 아버지가 해주던 말씀이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천체의 움직임과 음양의 이치에 준한 것이지만 책력에 나와 있는 손(損) 없는 날을 택해야 화(禍)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이 현실적이지 못했다. 토정비결 같은 점서(占書)에서 건져낸 공허한 삶의 틀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사주팔자라는 명목으로 주어진다면 구태여 고민하면서 인생을 살 필요 또한 없었던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이 전해졌는지 아버지께서는 점차 말씀을 아끼셨고 해가 바뀌어도 내 앞에선 책력을 펼치지 않으셨다. 또 다른 새해를 맞았다. 지난 과오에 상관없이 삼백 예순 다섯 날의 새날이 주어짐에 감사했다. 때론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한번은 꼭 해보고 싶은 것에 대한 욕심으로 올해도 촘촘히 계획을 세워본다. 하지만 이젠 할 수 있는 것보다 해도 안 될 것들이 주위에 포진되어 있다. 불가능은 없다며 무조건 달려들었던 열정, 안되면 될 때까지 해보겠다던 고집스런 강인함은 모두 어디로 흘러간 걸까.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올해는 어떤 비결서(秘訣書)를 전해주셨을지 궁금하다. 한여름의 태양처럼 크고 강렬한 꿈을 품으라 하셨을까. 가을볕의 이삭처럼 자신을 낮추는 소소한 이룸을 거두라 하셨을까. 오늘따라 아버지가 그립다. 정초면 책력을 펼치시던 그 모습이. <허경자 수필가·서귀포문화원부원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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