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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월28일 끝내 사임(辭任)했다. 지난 2005년 4월 제265대 교황으로 즉위한지 7년 10개월만에 한 사람의 가톨릭인이자 '전임 교황'으로 돌아간 것. 교황(敎皇)의 사임은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598년만의 일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사임은 이미 예견됐었다. 그는 2010년 자신의 저서 '세상의 빛: 교황, 교회, 그리고 시대의 징후'에서 자진사임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다. 책에서 베네딕토 16세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더는 교황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느끼게 되면 사임할 권리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무이기도 하다"고 피력했다. 또 지난 2월10일의 '사임 발표문'에서도 "하느님 앞에서 거듭거듭 제 양심을 성찰한 바, 더 이상 베드로 직무를 수행하기에 맞갖은 힘이 없다는 확신에 이르렀다"며 "이 행위의 중대성을 잘 의식하고 온전한 자유로 저에게 맡겨진 교황의 직무를 사퇴하겠다"고 밝혔었다. '음모론(陰謀論)' 등 일각에서 제기되는 각종 의혹을 사전에 일축한 셈이다. 본명이 '요제프 알로이스 라칭거'인 베네딕토 16세는 명석하고 신념이 강한 학자 출신이다. 모국어인 독일어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히브리어 등 10여개국 언어에 능통한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를 가리켜 '21세기 최고의 신학자' 혹은 '유럽의 지성(知性)'이라 칭하는 이유다. 대학 교수 시절의 라칭거는 개혁파의 선두 주자였다. 가톨릭의 물줄기를 바꾼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도 참석했던 그는 한스 큉·쉴레벡스크 같은 진보적인 신학자들과 손잡고 교회 개혁을 부르짖었다.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쇄신(刷新)의 씨앗을 뿌리는데 일정 부분 기여를 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그가 보수주의로 선회한 것은 1967~68년 독일 대학가를 휩쓴 네오마르크시즘 열풍(극렬 좌파 학생운동) 때문이었다. 진보적인 교수들마저 학생들에게 강의 마이크를 빼앗기는 지경에 이르자 라칭거는 큰 충격을 받고 이후 강경한 보수주의 성향으로 돌아선다. 교황청에 입성한 라칭거는 산아 제한이나 동성애(同性愛), 종교 다원주의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교회의 교리를 다시 확인하고 옹호하는데 앞장 섰다. 교황으로 선출된 후에는 "기독교 신앙의 쇠퇴와 세속화의 풍조를 막으려면 유럽이 먼저 기본적인 기독교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이를 위한 기도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하기도 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앞서 언급한 사임 발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의 무거운 직무를 함께 져 주신 여러분의 모든 사랑과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제 모든 허물에 대하여 용서를 청합니다. 저는 앞으로 기도에 전념하며 하느님의 거룩한 교회를 온 마음으로 섬기고자 합니다." 가톨릭의 오랜 전통상 교황은 종신직(終身職)이다. 선종(사망)하기 이전에 사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게 그간의 역사다. 하지만 베네딕토 16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직의 길을 택했다. 교황으로서의 마지막 모습은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차기 교황에 대한 무조건적 존중과 순명(順命)도 약속했다. 이제 베네딕토 16세는 자연인으로 돌아가 바티칸 인근의 수도원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낼 예정이다. 내려놓음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내려놓을 일들은 과연 무엇인가. <논설실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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